가수 백년설을 기리는 제1회 백년설 가요제가 2003년 5월 25일 그의 고향인 성주읍 성밖숲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3천여 성주군민과 서울과 대구 등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 출향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앉을 자리가 없었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년설 가요제는 성주농민회 등 일부 단체의 반대로 1회로 막을 내리고 중단이 되었다. 가요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백년설(본명:이창민)이 친일 행위를 했
기에 그를 기념하는 가요제가 개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고향인 성주 사람은 물론 우리 국민 대다수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백년설이 정말로 친일파인가? 나는 그 물음에 자신 있게 "아니요."라고 답할 수 있다. 그는 친일파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억압 속에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아픈 마음을 노래로 달래주고 용기를 심어준 애국자였다.
백년설이 많은 노래를 불렀지만 그중 대표적인 곡이 `나그네 설움`이다. 이 `나그네 설움` 레코드판은 나오자마자 불과 몇 년 사이에 10만 장이 팔렸을 정도로 당시 최고의 국민 애창곡이었다. 음반 판매 10만 장은 일제강점기 최고의 기록이었다.
나그네 설움이 만들어지게 된 데는 백년설의 민족정신을 보여주는 숨은 일화가 있다.
1938년 동북항일연합군에 의한 보천주재소 습격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불순분자 리스트에 올라 일본 경찰의 요주의 인물로 감시받던 백년설은 작사자인 조경환과 함께 주재소 습격사건의 배후인물로 몰려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 취조실로 끌려가 밤새도록 혹독한 문초를 받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풀려났다. 경찰서를 나와 광화문 거리를 걷는 백년설의 마음은 일본 경찰로부터 받은 모욕에 대한 울분과 함께 나라를 잃은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국땅을 헤매는 나그네의 신세처럼 처량함을 느꼈다. 이 울분과 나라 잃은 설움을 담아 부른 노래가 `나그네 설움`이다.
`나그네 설움`에는 나그네의 고달픈 생활과 눈물겨운 심사가 담겨져 있다. 또 나라를 빼앗기고 약탈과 중압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의 애환과 불만이 담겨있다. 백년설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은 이 노래를 고달픈 삶에 대한 신세타령으로 부른 것이 아니라 일제에 대하여 가슴 속에 맺힌 한을 읊었던 것이다. `나그네 설움`을 부르면서 우리 국민은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항일정신을 키울 수 있었다.
백년설 가요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1943년 총독부의 명령으로 백년설이 `혈서지원` 등 몇 곡을 부른 것을 가지고 친일파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이는 전후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억지 주장이다.
백년설을 누구보다도 좋아했던 나는 제1회 백년설가요제가 개최된 후 제2회 행사가 무산되자 백년설의 명예회복과 가요제 부활을 위해 `백년설노래사랑모임(백사모)`을 결성하고 회장을 맡았다. 그리고 모임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반야월 선생을 이상희 전 내무부 장관, 김재현, 이희수, 이정록, 이명자 등 백사모 부회장과 함께 찾아
뵈었다.
처음 `혈서지원 등 친일 가요를 부르라.`는 총독부의 지시가 있자 백년설과 반야월 선생 등 당시 유명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논을 했다. `죽느냐? 사느냐?`하는 문제였기에 모인 가수들이 진지하게 논의한 끝에 친일 노래이지만 모두 부르기로 결정을 했다. 2차대전 말기였던 이때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남양군도 등 최전선으로 끌려가야 했다. 최전선으로 징용되어 간다는 것은 곧 죽는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백년설이 `혈서지원` 등 몇 곡을 불렀다고 그를 친일파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야월 선생은 강조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혈서지원`의 1절은 백년설이 부르고, 2절은 박향림, 3절은 합창, 4절은 남인수가 불렀다. 또 이 혈서지원 레코드의 뒷면에는 친일 가요 `2천5백만의 감격`이 실렸는데 노래는 남인수와 이난영이 불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친일파라고 비난하지 않으면서 백년설만 유독 고향인 성주에서 친일파라고 매도를 하고 있다.
백년설은 2002년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문화훈장 보관장이 추서되었다. 정말로 친일파였다면 과연 대통령이 훈장을 서훈했겠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2009년 11월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포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도 빠져있다.
올해는 백년설 탄생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이제는 그동안 가졌던 백년설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고 성주군민 화합과 지역의 자랑스러운 인물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백년설 가요제`가 부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