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일제는 마침내 무조건 항복을 하고, 9월 2일 미 극동함대 기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맥아더 사령관 앞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일제의 항복은 한국에서도 이루어져 9월 9일 미 진주군 대표 앞에서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총독이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아베는 한국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비록 우리는 전쟁에서 졌지만 조선이 이긴 것은 아니다. 두고 보면 알겠지만 조센진(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옛 영광을 찾는 데는 100년도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센진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사관을 교육시켜 놓았다. 조센진들은 서로 이간질하면서 종놈들처럼 살 것이다. …보라,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되어서 이 땅의 시골 구석구석까지 퍼졌던 노랫가락이 있다. "미국X 믿지 말고 소련X에 속지 마라. 일본X 일어나니 조선 사람 조심하소"
한편, 1946년 11월 3일 새로 개정된 일본 헌법 한 구절이 비참한 전쟁에 실망했던 세계인에게, 특히 우리 한국인에게 안도와 희망을 선사했다.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질서를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으로서의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9조1항)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9조2항) 일본 `평화헌법` 조항의 국제적인 의미를 선명하게 알 수 있다. 태평양전쟁 후 맥아더 사령부가 군국주의 일본에 족쇄를 채운 입법이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했을 때 미국 정부는 카이로 선언에 따라 일본의 파시즘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전쟁 책임을 엄격하게 묻기로 했다. 그러나 1948년 중국의 공산화로 시작된 냉전시대는 이를 크게 바꿔놓고 말았다. 미국은 전후 일본과 강화조약을 맺을 때 일본 천황제를 유지시켰다. 천황에 전범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을 물리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일본 경제를 부흥시켜 방공의 보루로 삼기로 하고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도 묻지 않기로 방침을 바꿨다. 전후 국제질서의 재편을 가져온 1951년 대일강화조약은 이렇게 일본에 대한 관용 일변도로 완화정책을 취했다. 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강변하는 핵심적 근거가 된 것이다. 미국이 지금도 독도 등의 문제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건, 미국으로선 자신의 전략적 이해에 충실한 것뿐이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에 힘입어 일본은 내각에 `영토주권 대책 기획조정실`이라는 것을 만들어 각국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홍보를 집요하게 펼치고 있다.
일본이 천황제를 유지하는 한 `제국 일본`의 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짖으며 새로 출범한 `2차 아베내각`은 세상이 그렇게 사랑하는 `평화헌법`의 평화조항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이 조항의 입법을 주도한 미국도 은근히 개정을 부추긴다. 이 조항의 폐기는 바로 일본의 공공연한 재무장을 의미한다.
미국과 일본이 지난 4월 27일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에서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확정했다.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협력·역할 분담을 규정한 이 지침은 1978년 소련의 침공에 대비해 만들어진 것인데, 1997년 북한 핵 개발 의혹 등을 계기로 한 차례 개정되었다가 18년 만에 다시 개정되면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미일동맹의 군사 지침이 바뀌어 일본 재무장의 길이 열리게 됐다.
두 나라가 지향하는 것은 한마디로 `군사 일체화`다. 이는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추구하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핵심 수단이자, 일본에는 `평화국가` 틀을 벗어나 재무장을 본격적으로 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이 지침은 미·일 협력 범위를 종전의 `일본 주변`에서 전 세계로 넓혔다. 자위대가 미군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전 세계 분쟁지역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한반도 유사시에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군이 요청만 하면 자위대의 한반도 파병도 가능하게 됐다. 자위대의 한반도 주변 출병은 한국의 사전 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 안보주권과 관련한 중대한 문제다.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했던 `아베(阿部)`의 망언이 다른 `아베(安位)`에 의해 예언이 되게 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을 진전시키려는 미국의 압박이 커지고 있다. 그 한가운데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가 있다. 사드 배치를 비롯한 한·미·일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이 우리 안보의 해답이 될 수 없다. 이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총돌한다.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지면 우리나라가 설 자리는 좁아지게 마련이다.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풀어야 관련국에 대한 우리의 입지가 커질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분위기에 휩싸이지 말고 균형외교를 지켜야 할 이유다. 또다시 부를 노래 "…조선 사람 조심하소!" (2015.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