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구독률이 높은 조선일보에 색다른 `성명서`라고 할까, `양심선언`이라고 할까 하는 글이 어느 지면 하단에 광고 형태로 게재된 일이 있다. 대한의사협회의 글이었다. 내용인즉, 그동안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할 때 본의 아니게 1~2분간의 `잠깐 진료`를 했고,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검사를 하게 한 일이 있었다는 양심선언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의사들도 저간에 환자들의 골이 깊은 불만과 불신을 알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대형 종합병원에서 수십 년간 자행된 병원과 의사들의 잘못된 관행이었던 것이다. 형사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될지 모르지만 인격적인 책임(벌)은 져야 마땅한 소행이 아니었던가.
대형 종합병원은 운영상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의사들이 본의 아니게 주어진 시간에 보다 많은 환자를 진료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병원이 구입한 고가 장비의 구입비를 뽑기 위해서는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도 받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환자는 병원의 봉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 환자 입장에서 볼 때는 의사의 진료 예약 시간 몇 시간 전에 병원에 당도하여 미리 여러 가지 검사를 한 다음 진료를 맡은 의사를 만난다. 의사는 사전에 해당 환자의 진료기록(clinic chart)을 살펴 볼 사이도 없이 자기 앞에 나타난 환자를 맞이한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의사는 겨우 검사 결과의 이상 유무 정도를 말해주고 약 처방을 해주는 것이 그날 진료의 전부이다.
미국에 있을 때 그곳 병원에서 경험한 바로는 의사가 전날 환자의 진료기록과 검사 결과를 자세히 검토한 다음에야 환자를 진료한다. 설명도 자세히 해준다. 환자의 병을 낫게 해주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진료비는 다소 비쌌지만 매우 인간적인 조치다. 게다가 우리나라 의사들은 친절하지도 않다. 어떤 때는 의사가 거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환자들은 의사의 말을 그다지 확실하게 믿지는 않는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이번에 전국의 의사들이 어렵사리 한 양심선언을 앞으로도 꼭 실천하리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세상이 자꾸 변해가고 있는데 얼마 동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환자의 눈에 의사는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 심한 경우에 변호사와 의사는 간판 걸어 놓고 도적질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받고 있는 이 모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 평가를 하루 속히 털어버리기 바란다. 돈보다 더 중요한 명예를 회복하라는 말이다. 주변에 있는 내 자녀들이나 일가친척 자녀들이 의학 전문대학원에 다니지 않는 것을 나는 무척 다행스럽게 여긴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짧은 인생을 살면서 환자의 수명을 연장해 주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오직 돈밖에 모르는 탐욕스러운 사람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또 이런 쓴소리도 해야겠다. 의사들도 미국 같은 나라로 연수도 가고 여행도 해 봤을 줄 안다. 그곳에서는 소화제, 감기약, 아스피린, 신경 안정제, 수면제, 인공눈물 같은 가정상비약은 그로서리(우리나라로 말하면 슈퍼마켓)에서 얼마든지 의사의 처방 없이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최근에서야 10여 종의 약품을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을 뿐, 가정상비약의 자유 판매에 대해서는 의사들(약사들도)이 대단히 인색하다. 자기들의 처방이 있어야만 비로소 약을 구입할 수 있게 했으니 말이다. 언필칭 약물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제로는 그런 약이 필요한 환자로부터 진료비를 받기 위해서 의사들이 그런 제도를 고집하고 있다는데 사실인지 모르겠다. 일찍이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는 들었어도 그로서리에서 산 약의 오남용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우리나라 의사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대목이다. 의사들이 사회적인 존경을 받으려면 먼저 환자들을 인격적으로 정중하게 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