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고향에 대한 소회를 마치 주마간산이듯 간략히 한 번 쓰고 나니 그 많은 얘기, 겨우 문 열고 첫발만 들여놓은 형국이라 좀 계속할까 한다.  일본서 태어나고 해방을 맞아 한 서린 관부연락선을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계절은 초가을이었고 강정모퉁이를 돌아 동네 앞 다리를 건넜다. 다리라고 해봐야 오늘날에 비하면 소꿉놀이 같은, 걸친 나무를 새끼로 얽어 뗏장을 얹은 것이 전부였다. 그 낭만적 다리를 건널 때 달은 어이 그리도 밝았으며 별은 어쩌면 그렇게 반짝였던가. 사실 일본에서는 별을 보기는커녕 있는 지도 몰랐지만 난생 처음 보는 고향의 별은 그렇게 휘황히도 우리를 반겨주는 것이었다.  그땐 고향이 뭔지도 모르고 `내가 살아갈 보금자리`의 의미도 모를 때였지만 그렇게 강렬했던 고향의 의미는 여섯 살 어린이의 눈에도 너무 선명하여 지금까지도 각인이 돼 있다. 정확히 70년을 살아오는 동안 틈틈이로 그 기억이 떠오름을 어쩌지 못한다.  나의 법산!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무사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치르던 달불놀이의 뒷산 진수봉(進修峰)이 마치 천상의 수호신이 두 팔로 마을을 위호하는 듯한 형상의 마을이다. 유감스런 한 가지는 예삿이름이 아닌 유서(由緖) 깊은 진수봉의 유래가 있을 터인데 그걸 모르는 것 말이다.  제일 먼저 동네 앞 정중앙에 터 잡은 `앞정지` 얘기부터 할까 한다. 그 앞정지에 그때 서넛 어른들이 두 팔 벌려 재어도 손이 닿지 않을 정도였으니 지금에 와서는 그 크기를 짐작만 할 뿐이다. 그 나무를 정자나무라 했으니 지명 앞정지와 정자나무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잘은 모르지만 동네 앞은 정자걸이라 하여 큰 나무를 길러 숭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그야말로 샤머니즘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그런데, 근간에 와서 이 나무에 관하여 내려온 설화 하나를 들었다. 대홍수에 떠내려가던 사람이 이 나무를 붙잡아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 이후 나무는 크게 자라 마을의 수호신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사실 6·25 전후까지도 대보름에는 금줄을 두르고 치성을 드렸으니 가히 헛말은 아니었으리라.  나의 법산! 향내에서 일성대촌으로 융성했던 마을은 손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웃뜸, 중뜸, 아랫뜸으로 편의상 나누어 불렀으며 때로는 그렇게 나뉜 뜸끼리 패싸움도 있었다. 오늘날에 비하면 가히 원시적(?) 취락형태였다.  우리 논 7마지기가 있었던 남창은 조선시대 세미(稅米) 창고가 있었기로 붙은 이름인데 내가 생전 처음 들은 지명이다. 남창 앞 안산을 거슬러 올라가면 북현무(北玄武) 격인 감토봉(紺吐峰·일명 시루봉인데 시비롱이라 불렀다)이 나온다. 그 줄기 따라 동으로 가면 방태산과 그 아래 밭들이 나온다. 감토봉에서 생긴 골짜기가 방태에 와서는 큰 골짝을 형성하니 군대개울이라 이름 했다. 이는 또 무슨 연유가 있었던 걸까? 그 다음은 왜말리다. 지명은 유래가 있는 것이 보통인데 방태는 모르겠고, 왜말리는 본래 말이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와마리(臥馬里)라고 썼으며 돌아가신 종손(晶坤)어른이 어느 유인물에서 쓰고 설명하는 것을 보았다. 거기 우리 밭이 있었으니 내 큰형님도 기록으로는 와마리라고 썼었다.  샛터로 이어지는데 이름만 봐서는 아마도 야산의 한줄기였던 둔덕을 개간하여 전답을 이뤘으니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 짐작만 해본다. 샛터 뒷산은 보기 드물게 야산 치곤 하나뿐인 골짜기가 상당히 깊어서 붙은 이름이고 이어지는 산이 돌곡이다. 큰골과 돌곡에서 내려온 골짝물이 합해지는 우리기라는 도랑이 있다. 그 도랑 옆 둔덕에 이엉으로 지붕을 덮은 상여보관소(생이집)가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혐오시설이라 어른들은 모두 기피하였고 철부지 아이들만 장난스레 들여다보고 기웃거리던 기억이 있다. 생·활·사(生活死)가 일상사인 것을······.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최종편집:2025-06-17 오전 1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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