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거닐다 발아래 밟힌 것이
허무가 아님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가랑잎을 만났다
일에 쫓기며 눈감고 살아온 날들
이제야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
시리도록 당찬 유목의 꿈을 보았다
밟혀서 이리저리 부서지면서
또 다른 나무에게 꽃을 피우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는 가랑잎의 말을 들었다
온몸 뒤집으며 붉게 물들던 사랑앓이를
발을 가진 당신이 기억해 달라며
흙 속으로 스며드는 가랑잎도 있었다
흔적엔 미련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호미 거머쥐고 인생의 밭 일구던 나
안개 속 길을 걷다
깨달았다, 머문 시간이 길면
이유 없이 떠나야 할 길을 떠나야 한다
길 위에 가랑잎은 한 채의 게르*였다
지붕은 하늘이 보여 언제쯤이라도
새로운 행성으로의 이주를 꿈꾸게 했다
*게르 : 몽골 유목민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