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라면 어떤 것이던 좋아하는 나여서 무슨 수필 문예지라도 처음 대하면 그 책에 실린 작품을 한 편도 남김없이 다 읽는다. 3년 전 어느 봄날 우연히 대구에서 발간하는 수필책 한 권을 친구에게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다정한 친구가 선물로 준 작품들이기에 나는 3일안에 그 책을 다 읽었다. 내가 그 수필들을 읽어나가다가 나의 늙은 심장을 거선의 기관처럼 힘차게 뛰게 하는 작품 하나를 읽은 후 주책없이 그 이튿날 그 작품을 쓴 분에게 전화를 했다. 그 수필을 지은이는 여성이었다.  그 수필의 내용인즉 그 문우는 대구에서 수필문학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수백 리나 떨어진 고향에서 과수원 농사를 짓는다는 이야기였다. 과수원 중에서도 배 농사를 수천 평이나 짓고 있는데 이 세상 어떤 직업보다도 배 농사가 즐겁다는 이야기며 금상첨화로 수필문학을 공부하면서 배 농사에 몰입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도원경에서 사는 듯 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여류 문우의 남편되는 분이 성실하고 그 문우를 끔찍이 사랑하면서 배 농사에 몰입하기에 그 여류문우도 문학과 전원생활을 접목시켜서 사랑과 문학과 농원생활 등의 삼매경에 빠진 탓이리라.  6.25한국전쟁이 치열할 무렵 나는 고향에서 중학교를 다녔으며 입학하고 3년이 다 흘러서 졸업할 때가 임박할 무렵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잠시 수업을 중단하고 50여명이나 되는 우리 반 학생들에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기의 장래 희망과 포부를 말해보라는 것이 아닌가. 어떤 학생은 유엔 사무총장, 어떤 학생은 억만장자, 또 어떤 학생은 백전백승을 하는 불세출의 명장군 등 소위 세속적으로 하늘같이 높은 지위와 명예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같은 책상 같은 걸상을 두 학생이 사용하기에 내 옆에도 친구 하나가 앉아 있었다. 선생님이 그 친구에게 장래 무엇을 하겠느냐고 질문을 했을 때 그 친구는 느닷없이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 소리에 나는 조금 놀랐다. 그 친구의 학교 성적은 반에서 중등 이하였고 공부에도 성실하지 못한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이 녀석 허풍쟁이로구나 하고 마음의 쓴 웃음을 웃었다. 드디어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장래에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이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선생님, 저는 대통령이 될 재목도 못되고 그런 높은 지위나 억만장자 같은 것은 다 싫고 무명의 작가일지라도 수필가가 되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부럽지 않고 우리나라 최고 재벌인 000도 부럽지 않습니다. 저는 수필가 피천득 선생이나 이양하 선생같은 수필가가 되는게 지상의 목표입니다."  그 당시 수필가 피천득 선생하면 중학생도 거의 다 알만큼 유명한 분이고 이양하 선생도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서 그 분의 수필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만큼 뛰어난 수필가였다. 담임선생님은 눈을 크게 뜨며 나를 유심히 보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 너의 포부야말로 허무맹랑한 허세가 아니고 진실성의 빛이 햇빛처럼 광채가 나기에 나는 제자 하나는 잘 둔 것 같아서 참으로 기뻐구나" 하시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이 듣지 못하게 내 귀 가깝게 다가서서 "나는 제자 하나는 잘 둔 것 같아서 참으로 기쁘구나. 너의 포부야말로 허무맹랑한 허풍이 아니고 진실의 빛의 태양처럼 광채가 나기에 나는 제자 하나는 군계일학(群鷄一鶴)을 만난 듯 감개가 깊구나"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 반의 반장답고 의젓하구나"라며 극구 칭찬을 했었다. 그 당시는 중학생에게도 송강 정철같은 옛 어른의 문학을 교육시켰는데 나는 그 중에도 사미인곡과 고려 때 이조년(李 兆年) 선생의 다정가를 미치도록 좋아했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때는 마침 배꽃이 만발하던 때인 봄 날이었다. 내가 고교시험에 합격해 두고는 얼마간 집에서 놀던 때였는데 나는 음력 보름날을 삼일을 앞둔 어느 날 고령과 성주의 접경지역인 성주 땅인 `갖말` 이모집에 갔었다.  이모가 사는 마을은 성리학의 대가인 한강 정구선생의 후손들이 집성촌으로 사는 마을이다. 이모네 집과 이조년 선생의 묘소가 있는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 마을은 군은 달라도 거리가 지척에 있다. 나는 문득 이런 여가가 있을 때 더구나 배꽃이 피는 계절에 이모집에 가서 달빛 깔린 이조년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픈 욕구가 용솟음쳤던 것이다. 때마침 이조년 선생의 묘지와 가까운 곳에 생활의 여유가 있는 고령 어느 유지가 큰 배 과수원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을 이모에게 듣고 있었던 나였기에 나는 그 틈에 이조년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이모집에 2~3일간 놀면서 그 과수원의 달밤 배꽃도 보고 싶은 마음이 움텄던 것이다. 이모집에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종형이 있었다. 그 형도 내 마음을 십분 이해하겠다며 보름날 밤 일찍 저녁을 먹고 운수면 대평리를 향해서 신작로 길을 걸어갔다.  그 날 따라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달밤이었다. 나와 이종형은 이조년 선생 묘소앞에서 소주 한 잔 따라 놓고 큰 절을 두 번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묘소에 가기 전에 이조년 선생 묘소 근처 잔디위에는 일가족인 듯한 사람이 넷이 앉아서 저녁식사인지 간식인지는 몰라도 식사를 하면서 우리를 그들에게 오라하더니 과자와 빵을 먹으라고 했다. 중년부부와 아들 딸인듯 한 젊은 남녀 등 넷이었다. 알고 보니 중년 남자는 고령 어느 중학교 교감이었고 중년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리고 아들인 청년은 대학생이고 딸은 여고 1년생, 그래서 가족 넷이 그들도 배 꽃피는 달밤에 이조년 선생의 묘소와 달빛 어린 배꽃을 감상하려고 왔다고 했다. 여고 1년생이란 소녀는 내가 보기에도 어느 솜씨 좋은 조각가가 잘 만든 인형처럼 예뻤다. 치마만 걸치면 곰보 추녀라도 가슴이 뛰던 사춘기의 나로서는 그 여고생이 마침 밤의 벽공에 두둥실 떠있는 달덩이 같기만 했다. 드디어 대보름달은 중천에 떠있고 월광이 골고루 물결치고 있는, 꽃이 만발한 배꽃 들판은 어떤 말 어떤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신비, 황홀, 무아의 극치였다. 교감선생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드디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우리 다 같이 다정가를 낭독해 보세나 하는 게 아닌가. 이래서 우리는 천상에서 하강한 비단 폭이 너울거리는 듯한, 그야말로 이화금해(梨花錦海)를 바라보며 저 유명한 다정가를 사전에 리허설이라도 많이 한 것처럼 여섯 사람의 목소리가 잘도 어울려서 배꽃밭으로 흘러 나가는 게 아닌가.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은 삼경(三更)인데 일지(一枝) 춘심(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양하여 잠 못 이뤄하노라.  각설하고 그때가 6.25한국전쟁이 휴전이 되던 해였으니 무정세월아 어이 그리도 빠르니? 이제 반세기가 훨씬 지나 온세기를 채우려 하는구나. 그때 그 다정가 합창했던 교감선생님 그리고 사모님이며 대학생 아들은 세상을 떠났고 배꽃밭에 서있는 요정같은 그 때의 그 여고생도 3년 전에 작고했으니….  더구나 나를 더 슬프게 한 것은 그 때의 그 배꽃 과수원도 흔적조차 없어지고 상전이 벽해가 되지 않았는가! 나라고 해서 살아본 들 얼마나 더 살겠는가. 지난해 음력 섣달 그믐날 오후에 나는 방에 누워서 주마등처럼 허송세월만한 나의 지난 사연을 회상하고 있을 때 택배 하나가 배달되었었다. 보낸 이의 이름도 알 수가 없고 다만 수취인은 내 이름이기에 내 손으로 택배 박스를 열었더니 알고 보니 배꽃을 피우면서 문학을 즐긴다는 바로 그 여류 수필가 문우가 보낸 것이었다. 내가 지난날 친구가 선물한 수필집을 읽고 감동을 해서 전화로 칭찬을 했던 그 여류 문우가 보낸 배였다. 나는 전화만 했을 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 문우 부부가 피땀 흘려서 지은, 어린 아이 머리통만큼 크고 탐스런 황금빛 배들이 모두가 황금덩이처럼 소중하게 보였다.  나는 그 배들을 냉장고에 넣어 두고 객지에 있는 5남매나 되는 나의 아들딸들이 올 때마다 한 개씩만 깎아서 한 조각씩 나누어 주면서 다정가를 낭송한 후에 입에 넣는다.
최종편집:2025-06-17 오전 1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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