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 함께 농사를 짓던 형님이 다른 일을 시작하면서, 전에는 여러 작물을 재배했지만 처음으로 참외만 재배하기로 했다. 형편이 넉넉지는 않았기에 참외 농사를 잘 지어보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비료를 많이 쓰기보다 거름을 많이 주면 농사가 잘될 것 같았다. 그래서 돼지똥과 소똥을 닥치는 대로 경운기로 실어 날랐다. 산더미처럼 쌓인 거름을 보며 흐뭇했고, 밭이 시커멓게 될 만큼 거름을 밭에 듬뿍 뿌렸다. 풍성한 수확을 기대했지만, 그 해 농사는 망치고 말았다. 잎만 무성하고 참외는 별로 달리지 않았다. 달린 참외들도 품질이 엉망이었다. 다음 해에도 잎만 무성했다. 열심히 거름을 많이 냈는데,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즈음 친구가 일본 선진 농업을 견학하고 왔다며 `거름`과 `퇴비`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돈분(豚糞)과 우분(牛糞)으로 만드는 것은 퇴비가 아니라 거름이라고 했다. 가축의 배설물을 쌓아둔 채 뒤집어 주지 않고 비닐로 덮어 놓으면 미생물이 번식할 수 없기에 썩으며, 그것은 죽은 거름이라고 했다. 자주 뒤집어 주어 산소 공급이 원활해야 미생물이 번식해 좋은 퇴비가 된다는 것이다. 거름은 썩은 것이기에 밭에 뿌리면 오히려 작물의 뿌리가 건강하게 내리지 못하고, 꼭 필요한 잔뿌리들이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성주에는 현지 참외 공판장이 있다. 공판이 시작되면, 농부들이 출하한 참외들을 중매인들이 볼 수 있게 샘플로 한 박스씩을 여는데, 공판장에 나온 참외들을 보니 내가 재배한 참외보다 품질이 뛰어난 참외들이 많았다. 어떻게 그렇게 좋은 참외를 생산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좋은 참외를 출하한 사람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보니, 그분이 농사에서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도 퇴비였다. 퇴비를 만드는 데 드는 돈은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몇 년 후, 일본 오사카에 있는 토마토와 포도 농장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그 농장들에서는 3년을 숙성시킨 퇴비를 듬뿍 주고 있었다. 퇴비를 얼마나 많이 주었는지, 토마토 농장은 밭이 푹신푹신했다. 포도 농장에 가 보니, 포도나무의 굵기가 허벅지보다 굵고 스무 개 남짓의 가지에는 탐스러운 포도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살아 있는 퇴비의 힘이었다.  그 후로 나도 퇴비 만드는 데 힘을 다 쏟았다. 가축의 배설물에 톱밥과 낙엽 등을 섞은 후, 1년에 다섯 번 정도 포크레인으로 뒤집어 주고, 비가 많이 올 때만 비닐로 잠깐 덮었다가 다시 벗겨 산소 공급이 잘 되어 미생물 번식이 왕성하게 했다. 5년 전부터는 산에서 낙엽과 낙엽 밑에 하얗게 번식하고 있는 미생물을 모아 축분(畜糞)과 섞어서 밭에 듬뿍 뿌리고 있다. 제법 오래 전부터 우리 밭 참외는 공판장에서 최고 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초보 참외 농사 시절, 무지했던 나는 그저 열심히 축분을 모아 밭에 듬뿍 뿌리고는 풍성한 수확을 꿈꾸었다. 농작물은 뿌리가 좋아야 줄기도 좋고, 열매도 좋다. 참 농부는 그 길을 배워 작물의 뿌리를 튼튼하게 한다. 그것이 농부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모두 각기 자신의 인생을 경작하는 인생의 농부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고 싶어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양분으로 쓰느냐이다. 그럴 듯해 보이지만 생명이 없는 거름 같은 것을 쏟아붓는지, 퇴비처럼 생명이 살아 숨쉬는 것을 양분으로 쓰고 있는지에 따라 열매가 달라지는 것이다. 인생에 맺히는 열매들이 볼품없거나 고통스럽다면, 무조건 정성만 기울이지 말고 내가 내 인생에 쏟아붓고 있는 것들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 그들처럼 좋은 양분을 내 인생의 밭에 뿌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최종편집:2025-06-17 오전 1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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