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부터 천안의 s대학의 연구실에서 작품 제작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기숙사에서 지낸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었나보다.
이곳은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곳이라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기숙사에 매점이 있긴 해도 학생들 위주로 한 제한된 물품만 있어 필요한 물건을 사려면 한참을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하고 집에 갈 때도 전철을 타기 위해 천안역까지 나가는 시간도 만만치가 않다.
그동안 연구실과 기숙사를 오가며 주말에는 집에 가는 단조로운 생활의 연속이다 보니 새로운 소일거리를 찾게 되었는데, 연초에 가끔 식사도 함께하면서 학교생활의 무료함을 달래 주기도하고 좋은 친구 역할도 해주는 k팀장의 조언을 들으면서 텃밭 가꾸기를 해보기로 하였다.
기숙사 근처에 꽤 넓은 땅이 버려져 있어서 텃밭장소는 확보가 되었다. 제대로 농사를 지으려면 3월말이나 4월초에는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인데 서울에서 갑자기 중요한 일을 맡게 되어 그 쪽 일에 신경쓰다 보니 차일피일 하다가 4월 중순이 되어서야 텃밭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편, 과거 농고를 졸업했다는 k팀장은 백년초를 진즉에 심어놓았고, 다른 직원 한사람은 밭을 아주 잘 일구어서 심어놓은 채소가 벌써 싹이 나서 연한 잎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울타리도 보란 듯이 아주 멋지게 쳐놓아서 그 모양새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농사일을 조금 해보았고 도시생활을 하면서도 텃밭을 일구어본 경험을 토대로 멋진 농사 꾼이 되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하루 날을 잡아 근처에 나뭇잎이 썩어서 오래된 부엽토를 퍼담아 와서 밑거름으로 뿌리고 삽을 빌려 땅을 파서 갈아엎었다. 몇 년 동안 방치된 땅이라 잡초와 자갈 폐비닐 등이 엉망으로 엉켜있어 만만한 일이 아니어도 오랜만에 흙을 만지니 기분은 좋았다.
다섯 평 정도의 땅을 농기구도 없이 고르고 고랑을 파서 상추랑 열무 치커리 씨앗을 뿌리고 고추 열 포기 가지도 여덟 포기를 심었다.
모종을 살 때 열 포기를 달라고 했는데 막상 심으려고 봤더니 두 포기가 모자랐다. 속은 느낌이 들었지만 따지지 않기로 하고 버려진 그물망을 챙겨서 울타리도 대충 쳐놓자 제법 농장다운 모습이 갖추어진 것 같았다. 톱이나 낫, 망치도 없이 근처에 버려진 나무들을 주어서 대충 다듬어 돌로 쳐서 땅에 묻고 그물을 치다보니, 좋게 보면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깔끔하게 정돈된 옆집 농장과는 너무 비교가 되어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일이라고 오랜만에 땅을 파고 안 쓰던 근육을 쓴 탓인지 온몸이 쑤시고 여기저기 결리지 않은 곳이 없어 며칠을 고생해야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아내에게 텃밭 얘기를 하였더니 상추나 치커리 등도 모종으로 심고 고추나 가지는 한 두 포기만 심어도 될 터인데 왜 그렇게 많이 심었느냐며 마구 핀잔을 들었다.
아무튼 서울을 오가면서도 텃밭에 정성을 들이다보니 싹이 터서 크는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고 마치 자식을 키우듯이 애착이 가서 자꾸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 뒤 시장에 들러서 장화도 한 켤래 장만하고 호미와 괭이도 사서 북도 주고 잡초도 뽑으면서 제법 농사군티를 내면서 채소와 대화도 하고 사랑도 주면서 나름대로 정성을 들였다. 그리고 낫도 사서 풀을 베고 길도 다듬어 놓으니 주변 환경이 그런대로 깨끗해 졌다.
고추와 가지도 지주를 세워서 끈으로 묶어주었는데 작은 평수이지만 농기구도 필요한건 다 있어야 하고 사람의 손이 가야 하는 건 똑같기에 주인의 관심이 얼마나 가느냐에 따라서 농작물도 잘 자라고 못 자라는 것 같다. 상추는 어릴 때 잘 솎아주어야 튼실하게 자라는데 다른 채소도 마찬가지다. 씨앗을 심고 얼마간 기다리다보면 흙을 비집고 나오는 새싹은 마치 기적을 보는 듯하다.
그런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창조의 신비가 아니겠는가. 작은 씨앗이 어떻게 그런 새싹이 되어 우리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그 경이로움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짐작도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