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배롱나무였습니다
그 나무에서도 가장 굵은 중심이었습니다
가지가 빠져나간 옹이 자리
그 옹이에 쌓인 눈을 바라봅니다
한참 바라보노라니
옹이처럼 홀연히 빠져나간 당신이 생각납니다
당신이 병이 들어
아들딸네 함께 모여 가족사진 찍던 날
분위기가 워낙 무거워서
사진사가 좀 웃으라며 짐짓 수선 떨었지만
정작 찍혀 나온 사진에는
모두들 울음 직전의 얼굴이었지요
그로부터 몇 해 뒤 당신은 아주 떠나셨어요
우리 집 배롱나무는
한중간 굵은 가지가 부러지고
남은 가족들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
그동안 우리들은
한 그루 배롱나무 그늘에서 살았습니다
옹이 곁에 새로 돋아난 가지에서
꽃이 피었습니다
상처 자리에서 피어난 꽃은
오늘따라 더욱 처연하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