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말라리아예요."
"내가 말라리아에 걸렸단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약을 드셔야겠네요."
한번은 아프리카 여행을 하다가 탄자니아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 교회 사모님이 나를 보더니 "열이 있어요? 말라리아 검사를 해보지요." 했다. 나는 감기 증세니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사모님이 아프리카에서는 일단 의심해야 한다고 해서 병원에 찾아갔다.
의사가 내 피 한 방울을 뽑아서 유리판 위에 떨어뜨려 놓고 현미경으로 보더니 `말라리아`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판시다`라는 알약 세 개를 주었다. 그 자리에서 그 약을 먹고 말라리아가 끝났다. 그 무서운 말라리아가 말이다.
영화 벤허에서, 벤허는 멧살라와 이념 차이로 부딪히면서 그와 원수가 된다. 예루살렘 호민관인 멧살라는 높은 지위를 이용해서 벤허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그를 노예선으로 보내는데, 벤허는 노예선에서 집정관 아리우스를 구해 로마의 지위 높은 집정관 아리우스의 양아들이 된다. 그 후 벤허는 아리우스의 아들이라는 인장반지를 끼고 멧살라를 찾아간다. 그냥 벤허 같으면 멧살라가 벤허를 얼마든지 죽이거나 감옥에 넣을 수 있지만, 인장반지 때문에 꼼짝 못하고 벤허에게 굴복한다. 벤허가 말한다.
"내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소식을 알려다오. 그러면 괴로이 노 젓던 아픔을 잊어버리겠다."
"그건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허가를 받아 내!"
벤허가 담대히 소리지르자, 멧살라는 총독의 허가를 받아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의 행적을 조사한다.
사람의 마음의 세계도 그와 똑같다. 병균이 쳐들어왔을 때 우리 몸에서 백혈구가 병균과 싸워서 이기면 정상적인 삶을 살지만, 지면 더 이상 내 몸이 아니라 병균의 집이 되어버린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세계에서도 끊임없이 슬픔이나 고통이나 미움이나 악한 생각이 우리 마음을 침범해 들어오고 두려움이나 불신도 공격해 들어오는데, 우리가 유혹을 받아 고통스러울 때 마음에서 그것을 이겨내면 아무 문제가 안 되지만, 내 마음이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고통이나 슬픔에 매이고 죄와 불신에 매여 살 수밖에 없다.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내 힘으로는 그것을 이기지 못하지만 약을 힘입어 병을 이기듯이, 벤허의 힘으로는 멧살라를 이기지 못하지만 집정관 아리우스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멧살라를 이긴 것처럼, 우리 마음에 이런 전쟁이 있을 때 내 힘으로는 이길 수 없기에 외부로부터의 힘이 필요하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힘을 얻기 위해서는 그와 나 사이에 마음의 줄을 연결해야 하는데, 그 줄이 바로 `믿음`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남에게 속아본 뒤 스스로 믿음의 줄을 끊어버리고 자신의 판단으로만 살아간다. 바로 그것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를 믿고 살아야 한다. 부모자식 간이든, 부부 사이든, 친구 사이든. 오늘 이 시대 사람들이 불행하게 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불신으로 말미암아 서로를 믿지 않아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오는 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서로 마음을 열고 타인에게서 마음의 힘을 얻는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