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혼자 서성이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폭설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면
나는 스마트폰도 꺼 버리겠다
하루쯤 오동나무에 연처럼 걸리고 싶다
천지가 백야로 고즈넉한 산간이면
나는 더욱 좋겠다
낡은 초가 흙벽도 무너져 내린 주막
낯선 떠돌이들과 막걸리 한 사발 나누며
잘 익은 통무 김치 안주하고
중추신경에 시동이 걸리면, 그래
밤이 이슥토록 술 내음 풍겨도 좋겠다
초저녁 문풍지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사람처럼
울다 잠들고
숲에서 윙윙대는 야생의 모든 소리도 잠잠하다
눈 내리는 삼경에 사랑도 고뇌도 다 버리고
홀로 나를 만나는 고요한 밤
겨울나무 가지에 흰 꽃이 피어나는
순백의 결정들 오, 나의 사랑인가
은세계로 빛나는 밤이여
이제 마음의 깊은 문 하나 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