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숙부 수양대군은 권람, 한명회, 홍달손 등 여러 모사와 장정들을 불러모아 인적자원을 확보하고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만만치 않은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은 단종을 보필하고 있는 고명을 받은 대신들, 그 중에서도 좌의정 지위에 있는 김종서였다. 그는 일찍이 세종의 명을 받아 북방을 개척하고 육진을 구축하여 변경을 어지럽히는 여진족의 숨통을 눌러 놓았던 문무 겸전의 대인물로서 호랑이 정승으로 불렸다.   그를 살려두고는 대사를 도모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 수양은 치밀한 타도 계획을 세워 양정, 유숙 등 장사를 대동하고 월색이 희미한 초저녁에 새문 밖 김종서의 사저를 찾았다. 대문에 들어서서 종서가 나오거든 불문곡직하고 내려치라고 장사들에게 명했다. 그런데 종서 뒤에는 역사로 이름난 그의 큰아들이 따랐었다. 순간 계교를 내어 쓰고 있던 사모뿔 하나를 얼른 떼어버리고는 "어딜 가다가 사모뿔 하나를 잃어서 좌상에게 빌리기 위해 들렸노라"고 했다. 뒤따르던 아들에게 사모뿔을 가져오게 한 사이에 두 장사가 철퇴로 종서의 뒤통수를 쳐서 쓰러뜨렸다.   그 길로 대궐에 들어가 김종서가 황보인(영의정), 정분(우의정) 등과 부동하여 안평대군을 추대하려고 모반함으로, 미처 상감께 알릴 겨를이 없어, 종서를 먼저 죽이고 잔당을 소탕하려 한다고 아뢰고는 금군을 풀어 대문을 엄중히 파수하게 하고, 왕명을 빙자하여 영의정을 비롯하여 제신을 소집했다. 불시의 명을 받은 제신들은 모두 황황히 참래하게 되었는데, 그때 둘째 문 안에서는 한명회가 생사부(生死簿)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생부에 오른 사람은 셋째 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으나 사부에 적힌 사람은 둘째 문에서 철퇴로 내려쳐 죽였다. 한명회의 손에 들려진 이 살생부가 한국판 블랙리스트의 원조이다.   1625년 영국 왕위에 오른 찰스 1세는 부왕 제임스 1세처럼 청교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왕권신수설을 철저히 믿어 절대왕권으로 국가를 다스리려 했다. 그러다가 결국 의회파(주로 청교도들)와 왕당파(주로 국교회 신도들) 간의 내전이 시작되어,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의 승리로 끝나면서 찰스 1세는 처형당하고(1649), 그의 아들은 추방되어 프랑스 루이 14세에 몸을 의탁했다.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가 된 크롬웰은 호국경이라는 칭호를 얻어 영국연방을 세웠으나, 그도 의회와 싸움을 벌이며 `독재자`, `혁명의 반역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1658년 크롬웰이 죽자 대부분의 영국 국민은 왕정복고를 원했다.   1660년 찰스 2세는 국민의 환호를 받으며 런던으로 돌아와 왕위에 앉자마자 아버지 찰스 1세의 복수 계획을 은밀히 세웠다. 처형에 가담한 판사와 법정관리 58명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13명은 시해죄로 사형시키고 25명은 종신형에 처했으며, 나머지 20명은 처벌을 피해 도망쳤다. 악명높은 `블랙리스트`의 역사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 불이익을 주는 블랙리스트와는 반대로, 생명을 살리고 혜택을 주기 위한 리스트를 `화이트리스트`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한 폴란드의 어느 마을. 시류에 맞춰 성공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는 유대인이 경영하던 파산한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나치 당원이 된다. 그것을 군용 식기공장으로 개조해서 값싼 유대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독일군과의 인맥을 통해 제품 주문을 받아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쉰들러는 유대인 회계사와 친분을 맺으면서 유대인 학살에 대한 양심의 소리를 듣고 `한 생명의 무한한 가치`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그런데 드디어 그 생명의 위기가 닥쳐와, 독일 패망 7개월을 앞두고 모든 유대인은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로 이동시키라는 명령이 내린다. 그때 그는 잠 못 이루는 번민 끝에 놀라운 선택을 한다. 독일 장교에게 빼어내는 사람 숫자대로 뇌물을 주는 방법으로 유대인을 구할 계획을 세우고, 이른바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게 된다.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무려 1,100명이 그를 따라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다.   마침내 독일이 항복하자 유대인들은 자유의 몸이 되고, 기차를 태워 그들을 보내면서 쉰들러는 철로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다가 무심코 유대인들이 금니를 빼어 만들어준 반지를 보게 된다. 그는 소리친다. `왜 내가 이것을 끼고 있지? 이 금반지를 팔았더라면 한 사람의 생명을 더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이 구해내지 못한 유대인이 가스실로 끌려가는 모습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스티브 스필버그의 기록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줄거리이다.   쉰들러는 1974년 세상을 떠나 이스라엘의 서예루살렘에 안장되었다. 그는 유대인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지만 그들을 살리고자 전 재산을 털었다. 자신에게 좀더 돈이 있었다면 더 많은 생명을 건질 수 있었는데 하며 자신을 향해 통곡하며 몸부림쳤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고통받는 생명,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무슨무슨 블랙리스트에 귀기울이며 흥분만 하지 말고,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나의 화이트리스트, `쉰들러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2017.01.23.)
최종편집:2024-05-21 오후 01:46:03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유튜브페이스북포스트인스타제보
PDF 지면보기
오늘 주간 월간
출향인소식
제호 : 성주신문주소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3길 15 사업자등록번호 : 510-81-11658 등록(발행)일자 : 2002년 1월 4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성고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45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성고e-mail : sjnews1@naver.com
Tel : 054-933-5675 팩스 : 054-933-3161
Copyright 성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