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얘기는 언제 하거나 들어도 어머니 품속 같이 안온하고 정겹다.
지금 본보가 기획기사로 군내 지명 유래를 연재하고 있다. 그런데 내 고향 우리 법산에 대해서는 한 줄 언급도 없이 그냥 지나가 버려 그 서운함을 몇 자 적을까 한다.
누구나 고향 얘길 들으면 뭔지 모를 자존감이 생긴다는 것은 비록 나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라도 나고 자란 그 본향의 지역 자존감이나 `나` 개인의 자존감이 있어 누구로부터도 속박당하지 않는다. 이런 소중한 자존감이 어느 날 갑자기 이유를 알 수도 없고 본의도 아니게 제대로 대접을 못 받으면 그 허허로움은 상당히 클 것이다.
우리 성주의 연혁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성주목 신라 본피현에서 출발한다. 오래 전(2002년경?) 제수천 선생이 당시 성주문화원장 재임 때 군 연혁과 지명 유래에 대해 손수 프린트로 등사한 유인물을 경산지 상하권과 함께 그로부터 받은 일이 있다. 아마도, 1832년에 내 선대 한 분인 최주하 님의 성주목읍지 편찬 이후 현세에 와서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물론 나도 그 관계의 유인물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경산지는 있어도 그 정성스레 직접 쓴 프린트물은 내 서궤에서는 찾을 길이 없으니 먼저 그분께 미안한 마음이다. 나대로는 복사 인쇄물인 경산지보다는 육필 프린트물이 더 값어치가 있어 깊숙이 보관한다는 것이 그만 소재 불명이 되고 말았다. 참 유감이다.
비록 신문사의 제한된 지면 때문에 여기서 탈락됐다는 것은 몹시 서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 기회에 우리 법산 취락 형성에 대해 나름으로 그 편린이나마 지면을 통해 알리게 된 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은 아닌가 한다. 이런 것을 두고 전화위복이라 하는 건가.
먼저 우리 법산의 지명 유래부터 적어본다. 마을 뒷산 형세가 법령의 령(令)자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그 뜻을 따라 `법산`이라 했다는 설과, 동쪽 별뫼산(星山)이 엎드린 호랑이 형상이라 그 기를 누르기 위해서는 호랑이가 가장 무서워 한다는, 저를 잡는 틀 `호외법기(虎畏法機)`의 법자를 따서 `법산`이라 했다는 설화가 전한다.
옛날 주군현의 경계를 획정할 때 그 선을 갈지자(지그재그) 형으로 그었다 한다. 그것은 서로의 민정을 살피기 좋고 개방 행정을 통하여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서 그랬다는 야설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성주와 인접했던 성동(성리)이 고령에서 성주로 이관하고, 대신 법산은 가까운 고령으로 편입하라는 경계 조정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성동은 이관이 됐지만 법산은 끝내 `성주 법산`을 고수하기도 했었다. 이는 70년대의 일이니 내가 보고 들은 바이기도 하다.
그 훨씬 이전 현재의 수륜면은 각 면 법산·지사·청파를 합쳐 수륜면으로 통합됐다고 여러 문헌은 고증하고 있다. 그래서 일제 때는 주재소(현 파출소)도 있었다고 어른들은 증언하고 있다.
또 경부선은 현 법산 앞 현 국도가 그 부지였었는데 모두 반대해 현재의 대구-왜관이 됐다고도 한다. 철도가 개통되고 외지인이 들락이게 되면 순후한 양반 동네에 악영향이 미친다고 반대를 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유교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 오늘의 산업사회에서는 기간산업 유치가 살 길이라며 사활을 거는데 말이다.
지정학적으로만 보아 군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은 기사화 해주고 나머지는 변두리니까 홀대를 하는구나! 라는 투정조의 우스개 한 마디로 나는 앙갚음(?)이 되겠지만 다른 동네는 어찌할꼬.
정말 유감스러운 것은 따로 있다. 우리 법산최문 입향조이신 죽헌 최항경 선생 삼부자 위패를 모신 오암서원이 누락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최문의 자존심을 넘어 유향의 총본산인 서원의 홀대가 바로 향토문화유산의 홀대로 이어지는가 하여 참으로 애석하다고도 생각했다.
어쨌거나 우리 법산 뿐만 아니라 다른 동네들도 나름으로는 지명 유래와 유서가 있는 취락인데 그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섭섭한 마음의 일단을 주마간산으로나마 적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 내 마음 헛헛함의 표현일 뿐, 성주신문이 `사회의 공기`라는 언론의 사명을 선도하며 발전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울러 우리 성주군의 군세도 날로 확장 발전되길 기원한다. 가야산의 정기를 받은 성주, 그 복지 위에 법산이 있으니까 `성주가 곧 법산`이라고 감히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