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로 남도여행을 결심했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본 영향일까 경상도에서 태어난 필자에게 가족과 함께 할 여행지로 전라도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으나,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가족과 전라도 문화를 공유하고 싶었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남원, 우리에게도 익숙한 춘향전의 배경도시이자 추어탕으로 유명한 곳이다. 광한루에 걸터앉아 호수에 노니는 큼직한 잉어들을 보고 있자니 그놈들의 팔자가 늘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호수에서 놀고 있는데, 옆에 잉어먹이 가판대가 생겨 사람들이 돈을 주고 잉어의 먹이를 사서 던져준다. 그 먹이를 잉어는 재빨리 먹어치우는 것도 아니고, 서로서로 나누어 먹는 듯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었다. 옆의 행인들의 얘기를 듣자니 요약하자면 `이곳 남원은 아주 작은 공장 몇 개 빼고는 공해를 유발하는 시설이 없는 청정한 도시`라는 자랑이었다. 그 말을 듣고 인근 식당에서 먹는 남원추어탕은 자연그대로의 별미였다. 그 다음으로 들른 곳은 담양이다. 어릴 적 지리시간에 지역별 주요산물로 배운 `담양 죽제품`의 도시 담양은 지금도 대나무로 유명하였다. 조선중기에 양산보라는 학자가 스승 조광조의 유배소식에 낙담하고 그길로 낙향하여 지은 소쇄원의 입구부에는 거대한 왕대숲이 있는데, 이를 본떴는지 곳곳에 왕대숲이 즐비하게 되었고, 이제는 담양의 대표 브랜드가 되지 않았나 유추해 보았다. 군에서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죽녹원이라는 대나무를 소재로 한 테마파크를 조성하였고, 이제는 소쇄원 못지않은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반세기 전에 가로수로 심었던 메타세콰이어길이 최근에 방송과 SNS를 타면서 연일 상종가이고, 가로수 하나 잘 심어 이제는 돈을 받고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관리는 자연이 하는데 말이다. 마지막 날에 들른 곳은 순천. 이곳은 국가 습지정원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순천시가 습지로 유명세를 날린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또한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으리라 짐작이 간다. 그 이유는 이웃한 광양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면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바로 인접하여 여러 조건이 다르지 않았을 터인데, 한쪽은 개발을, 다른 한쪽은 보전을 택하였다. 현재는 이웃한 광양에 제철소와 더불어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고, 반면 순천은 그 숱한 유혹은 떨쳐 버리고 오직 습지와 자연환경만을 고집하였다. 4백여 년 전에 그곳에 유명한 양반인 고산 윤선도가 남긴 시조 `오우가`에서 변치 않는 다섯 가지 벗을 읊듯 순천인들은 습지와 자연을 벗으로 삼아 절대 도가 넘치는 수확이나 개발을 하지 않았던 지혜를 모아 이제는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이라는 슬로건이 허황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하는 구호가 되게 하였고, 8천원의 입장권이 아깝지 않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었다. 3일을 둘러보면서 저네들의 소름끼치는 행정력을 하나 더 읽었다. 몇 해 전부터 조용히 전라도의 도로에, 명승지에, 그리고 곳곳에 동일한 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백일홍이다. 백일홍은 경상도에서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허나 그 동질감과 규모가 상상이상이다. 지금은 아직 낮은 나무도 있지만 머지않아 이들 나무가 성장하여 도전체를 덮는다면, 여름철 100일은 붉은 물결로 도 전역을 적실 것이고, 겨울에는 매끈한 백일홍의 수피가 수묵화처럼 자리잡을 것인데, 이를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백일홍을 우리 경상북도에서는 도화(道花)로 정해만 놓았고, 정작 조경수로는 상록활엽관목인 남천이 천덕꾸러기마냥 동네방네 심겨지고 있다. 오는 길은 머리가 복잡하였다. 남해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저녁 무렵에 도착한 성서IC 부근에서 `성주` 방향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는 순간, 필자의 복잡한 심경을 성주에 토로하고 있었다. 성주하면 예부터 양반동네이고, 벗 삼을 자연도, 가치있는 문화재도 경주 부럽지 않을 만큼 갖추었다는게 사견이다. 돈도 되지도 않는 담양의 대나무보다 참외라는 소득작물이 있고, 그것도 참외하면 성주라는 인지도 또한 드높다. 그런데 넓은 들판의 참외와 배후의 가야산국립공원만으론 만족하지 못했던 것일까 언제부턴가 농지를 대신해서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것도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디자인의 조립식 판넬로 날림공사하듯 시각적으로도 편치 못한 것들이 들어서더니 이제는 군청에서조차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용도지역 변경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형편은 사방이 농지와 산림인데 공장이 들어온다고 하면 버선발로 나가 사위 맞듯 해 온 행정으로 인하여 이제는 그 좋던 황금들녘을 누더기로 만들었고 이도저도 아닌 대구 인근의 부속도시 마냥 전락하였다. 사드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지금 성주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클린성주, 꿀참외`라고 홍보하는 것은 분명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자문해 보았다. 필자의 답은 `가까운 장래에는 답이 없다.`였다. 그래도 그것이 현실이면 직시하여야 한다. 공장으로 망쳤으니 다른 시설을 끌어오리라는 단기적인 처방은 성주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비용을 초래해야 함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수장의 임기 내에 치적을 위한 예산도 어쩌면 신기루일 수 있고 가까운 장래에 새로운 수장에 의해 버림받게 되는 게 현실이다. 이 시점에 필자는 여행 첫날 보았던 광한루의 잉어를 돌아보게 된다. 따로 노력을 하지 않음에도 사람이 먹이를 물고와 먹여준다. 우리나라 모든 잉어가 이런 삶을 영위하진 않는다. 그 잉어가 광한루라는, 명승지 중 명승지에 있으니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성주군의 바람직한 미래상은 자연과 문화가 더해주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원근각처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기꺼이 비용을 부담하는(willing to pay) 시스템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 터전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어떤 이해관계에도, 개인적인 야망에도 치우침 없이 오직 성주와 성주군의 현재, 미래세대만을 생각하는 군의 위정자들이 대(代)를 이어 하나의 지표(指標)만을 바라보았을 때 실현가능하리라 확신한다. 그렇게 함께 목 놓아 부른 미래에는 마치 광한루의 잉어처럼 모든 물욕과 번뇌를 벗어버린 성주주민들이 다른 어떤 곳도 부러워하지 않고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바라마지 않는다. 공장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갈림길에 있는 성주가 앞으로 100년을 바라보며 내릴 답이라 필자는 믿고 있다. * 이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종편집:2025-06-17 오전 1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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