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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한지도 1백일이 지났다. 솔직히 말해 기대도 있었지만 우려도 했다. 중도보수 시대가 가고 진보좌파가 득세를 했으니 국가 기본 틀부터 변화가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 너무 많이 빗나갔다.
무엇보다 공정 28.8%나 진척된 신고리 5·6호기를 원전안전위원회가 20분 회의 끝에 공사 중단 결정을 한 것이다. 물론 전문가의 의견도 듣지 않았고 심지어 `원전 마피아`라는 모욕적인 말로 원전 불모의 분야를 개척해 원전 3대강국으로 키워온 사람들의 명예까지 짓밟았다.
이건 졸속도 아니고 절차도 채 거치지 않는 날치기 행태다. 정말 필요한 조치를 그렇게라도 밀어붙여야 할 시대도 있었다. 이른바 경제개발시대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99%의 원전 기술을 국산화하며 이 나라 산업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했고, 수출이 살 길인 우리가 원전 수출 해외 시장도 개척해 놨는데 그걸 걷어차는 나라가 지금의 우리나라이다. 그 시장 규모가 600조나 된다는데 말이다.
또 영국이 계획하는 원전 13기 중 7기에 한국이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는 폐쇄한다니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이를 보면서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한 때 불량식품 과자로 인한 소동이 있었다. 그 제조사 사장이 집에 와서 그걸 먹는 아들을 본 것이다. `야 이놈아 그걸 먹으면 어떻게···`라며 빼앗아버렸다는, 네 컷 만화에 나온 얘기다. 꼭 그 꼴이다.
지금은 탈원전이 대세이고 이른바 태양광·풍력 등 청정에너지 개발의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언젠가는 탈원전을 해야 할 것이니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쓰고 있거나 건설 중인 원전은 수명 연한까지 쓰고 그 다음부터 쓸 대체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지금 전력의 30%가 원전 전력인데 이걸 모두 청정에너지로 대체하려면 `기본계획 수립`이 먼저일 텐데 그도 없이 폐쇄부터 하는 듯하니 그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더구나 태양광은 밤과 구름 낀 날에는 발전도 안 되고 또 넓은 부지가 필요하다니 우리 좁은 국토에서는 비효율이라고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원전 고리1호기가 가동된 지가 40년도 더 지났다. 이른바 노하우도 쌓았다. 그동안 관리 부실이나 사소한 사고로 일시적 정전은 있었어도, 수명 다한 원전 말고는 사고로 인해 폐쇄한 원전은 없었다. 탈원전으로 인한 제조업 등 산업구조의 변화는 불을 보듯 뻔한데 이에 따른 전력 수급계획이나 대비책을 세웠는지도 의문이다. 탈원전이 세계적 과제인 것은 맞지만 당장은 불요불급이어서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클 탠데 이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강행하는 이유는 뭣인가.
국가의 교육 정책을 100년대계라 하듯 에너지 정책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런 국가 중차대한 문제를 너무 조급히 서두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선진국 독일 스위스도 탈원전 완성에 30여 년이 걸렸다는데 우리는 왜 회의 20분 만에 전광석화로 결정하는가.
중요한 것은, 탈원전이라는 대전제를 이미 세웠으면 그대로 추진하면 될 것을 왜 배심원단, 공론화위에 전권을 준다고까지 했나. 이제는 그것도 서로 미루는, 조변석개의 정책을 누가 믿을까. 누가 어떻게 소신껏 결정한다 해도 요식행위인 들러리를 면치 못할 것이다.
국가의 주요 정책 수립에는 그야말로 깊은 고뇌와 철저한 검토가 필요한데 이건 너무 즉흥적이다. 무엇이 그리 쫓기듯 국가 경영을 할 이유라도 있는가. 5년 임기 안에 쌓아야 할 `치적`만 생각하는 듯하다. 정말로 역사에 남을 치적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조급증에 떠밀리듯 하지 말고 치열한 숙고가 먼저였어야 한다. 졸속은 언제나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100년대계의 국가 계획에는 비전과 소신과 혜안을 가져야 한다. 이른바 청사진부터 보여야 한다. 나라의 기본 정책은 5년 시한의 것만은 아니니까 말이다. 정말 원전 폐쇄로 인하여 발생할 문제들을 검토라도 한 번 해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뇌한 흔적이 없다.
원전 문제는 그렇다 치고 더 큰 충격은 또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우정사업본부가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가 권력이 바뀌자 여보란 듯 찬반 3:8로 뒤집고 말았다. 이 무슨 작태인가. 뒤집은 그들을 향해 영혼을 판 사람들이라고 매도한다. 당연하다. 언제부터 이 나라에 `인간해바라기`인 따리가 있었나···? 그런 코미디는 없다. 권력무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맥이 빠진다.
권력이 바뀌기 전 당시 야당에 반대자도 있었지만 적법하게 결정된 것이니 재검토할 이유가 없다고 한 사안이었는데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이게 이 나라 정치 현실이다. 화가 이중섭도, 입지전적 경제인 정주영도 기념우표 만드는데 대통령 지낸 사람 기념우표도 못 만들게 하는 나라, 참 한심하다. 참 옹졸하다. 정치적 이념이나 견해가 다른, 대척점에 있는 사람도 박정희가 경제의 기틀을 잡았고 국가·역사 발전에 공이 있다고 인정한다는데, 기념우표 정도는 발행하게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수구보수를 꼴통이라 하듯 진보혁신도 꼴통이긴 마찬가지다.
박정희 공과를 말할 때마다 나오는 화두, 쿠데타·친일·독재는 빠지지 않는다. 쿠데타 했다. 쿠데타 전 정치 상황이 어땠는지를 알기나 하는가. 4·19로 잡은 권력, 날이 새면 신·구파 권력 싸움이고 장관 수명은 사나흘이었다. 4·19 주역 학생들이 평양대학생과 회담하겠다고 시위를 했다. 그 충정은 이해하고도 남았지만 당시는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피로 세운 민주정부, 그 이름이 무색했다. 보다 못한 군부가 나섰다. 그것이 쿠데타이다.
일본 육사와 만주군관학교 다닌 것도 친일인가. 이콴유 싱가포르 수상도 일어를 배우려 일본군 정보부에 들어갔고, 남아연방 넬슨 만델라는 영국 통치를 벗어나기 위해 영어를 배워야 한다며 영국 유학을 간 사실은 왜 모르는가. `지피지기···`가 아닌가. 누구라도 당시 배울 곳이 어디 있었나.
독재자? 국민 저항도 있었고 계획된 국정 추진을 위해 `민청학련` `통혁당` 등 인권 유린, 억압 정치를 좀 하긴 했다. 오늘의 시대 관점에서 보면 틀림없는 독재자이다. 인권도 좀 많이 짓밟았다. 그것도 오늘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보릿고개 면하려고, 더 잘살아보자고 세운 계획을 돌파하자니 불가불이었다.
1950년대 북베트남(현 베트남)은 지도자 호찌민이 주도해 토지개혁을 하는 과정에서 지주를 학살하고 군을 동원해 농민 봉기를 진압하느라 1만5천 여명의 국민을 살해한 사람이다. 그래도 탄생 매 주년을 맞을 때마다 과보다 공이 더 소중하다고 여겨 기념우표도 발행하고 있다.
중국 마오쩌뚱은 1966년의 홍위병 사태의 혹독한 문화혁명일 때 무려 200만 명의 목숨을 빼앗고도 그들의 자존심인 천안문 광장에 초상화도 걸리고 화폐에도 얼굴이 그려져 있다.
혹독한 비판과 극언도 서슴지 않으며 박정희의 과만 얘기하는 사람에게 그럼 공은 어쩔 거냐라고 물으니까 그는 마지못해 과3공7이라 하기도 했다. 사실 지금도 그것이 대체로의 정설이다. 그런가 하면 박정희의 박자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음이 사실이다. 그 중에는 현직 고위직도 있고 이른바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입안했다. 물론 이전 장면 정부가 세운 계획이 모태이긴 하지만 추진은 그 악명 높은(?) 3공이 했다. 큰 슬로건 `조국근대화`로 시작해서 중화학공업, 농공병진 등 다 언급할 수도 없다.
고속도로 건설 반대한다며 공사장에 가서 드러누운 야당 지도자도 있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고 차도 없는데 웬 고속도로? 부유층 세컨드(내연녀) 싣고 다니며 유람하라고 길 닦느냐며 반대를 선동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서 국가의 비전 같은 것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50여년 전의 일이다.
배고픈데 무슨 민주주의냐고 하며 정체불명의 `한국적 민주주의`도 있었다. 좀 잘살게 된 다음 민주주의 해도 된다는, 한시적 유예였다. 당시 우리보다 선진국인 필리핀에 농학자를 보내 `증산쌀`을 연구케 했다. 그래서 성공한 것이 통일벼이다. 밥맛은 좀 없어도 획기적 증산에 농민들이 웃었다. 그때는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증산왕을 선발한다며 독려를 하다 보니 토종보다 네댓 배 증산이 됐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외람되지만 그 지긋지긋한 `보릿고개`를 일단은 해결했으니 유사 이래 처음이 아닌가 한다.
새마을운동! 역시 박정희의 치적을 끝내 인정 않는 사람들은 새마을운동,박정희가 했나? 국민이 했지라고 폄하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면 국가 지도자는 있을 필요가 없네···? 지금도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들이 우리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오고 있지 않는가.
뿐만이 아니다. 국민들의 `잘살아보자`는 `고난의 행군`을 알고 그 역정을 아는 외국에서도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송했다. 긍정적 사고를 가진 사람도 통상 그렇게 썼다. 더 나아가 `고유명사화`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당시는 국론이 오늘날과 같이 각양으로 분출하는 이념 같은 것도 없는, 일사불란이 주조였다. 물론 그 시대는 민주주의라곤 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다양·다원화의 현상도 없었고 오로지 잘살아보자는 지향점만이 생활의 전부였다. 모두 나섰다. 국가는 앞에서 끌고 국민은 뒤에서 밀며 국민 모두가 잘살아보자는, 어쩌면 절박한 목표 하나뿐이었다.
나도 처음 5·16일 때는 20대 초반이어서 쿠데타라고 비판했었다. 그러나 그의 신념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서 존경을 넘어 숭모(?)까지 갔는지도 모르겠다. 보수꼴통이라고 누구라도 시비를 걸어오면 다 받아주겠다. 문자폭탄도 기꺼이 받겠다. 나름으로는 논리도 펴겠다. 그래도 나는 `지구는 돈다(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다.
원전 건설 중단과 폐쇄, 거기에다 기념우표도 백지화하니 하도 기가 막혀 좀 길게 썼다. 그래도 미처 다하지 못한 소회가 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