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감나무 아래를 보니 빨간 홍시 하나가 떨어져 땅바닥에 납작하게 터져 있었다. 이 집으로 이주를 한지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날 이후로 매일 보아 온 감나무이지만 올해는 유독 눈길이 자주 간다. 내가 이 집으로 오기 전, 집 뒤 도로부지에 누군가 심은 대봉 감나무이다. 가을이면 주먹만 한 감이 열렸지만 숫자도 적고, 마땅히 수확할 도구도 없어서 눈 구경만 하였다. 감나무 심은 이는 이곳을 떠났는지 매년 감은 까치가 독식했다. 까치밥을 키우는 감나무인 셈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감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크기도 주먹보다 큰 것들이 한 접은 넘어 보였다. 무주물(無主物). 주인 없는 나무에 탐스러운 감이 주렁주렁 열리자 묘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혹여 올해는 "이 나무는 내가 심었다오. 지금까지는 감 하나 따지 않고 지켜만 보아 왔소. 올해는 풍성하게 열렸으니 까치밥 몇 개 남겨두고 따가야겠소"하고 나이 지긋한 노인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늘 무심하게 쳐다만 보던 나무. 내가 심지 않았으니 내 것이 아니다하고 마음을 비운 나무. 이 나무가 올해는 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익자 이 가지 저 가지에 선홍빛 홍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혹여 올해는 주인이 나타날 것 같은 생각에 홍시가 있어도 지켜만 보았다. 그런데 오늘 `후드득`하는 소리를 듣고 감나무 밑을 보니 탐스럽던 홍시 대여섯 개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직은 먹을 것이 들판에 풍성한 시기인지 까치도 보이지 않았다. 까치란 녀석도 입맛에 맞는 먹잇감이 다 소진된 뒤라야 감나무를 기억하고 찾아오는 것 같았다. 유년시절 시골집에는 큰 감나무 여덟 그루가 집 담장을 따라 심겨져 있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제일 먼저 하는 놀이가 장대를 들고 감나무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배는 고프고 먹을거리는 늘 부족하던 시절. 푸른 하늘 아래 선홍색으로 달린 홍시는 얼마나 군침 나게 했던지. 흔들리는 가지 위에 걸터앉아 홍시 한쪽 입에 넣으면 세상이 얼마나 눈부셨는지 모른다. 홍시 하나에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내 소유의 것이니 수확을 함에 마음이 평안했음이요. 주린 뱃속을 채워 원초적인 식욕을 해결했기 때문이리라. 홍시에 대한 지독한 사랑도 종지부를 찍게 되는 일이 있었다. 홍시를 과하게 먹고 배탈이 나서 학교를 이틀 동안 가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이틀을 고생한 후로는 홍시를 멀리 하게 되었다. 홍시가 바닥에 널브러진 것을 본 날. 감나무를 다시 유심히 살펴보았다. 농익은 홍시가 눈에 들어왔다. 이놈의 홍시가 아내의 마음에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아내는 홍시사랑이 유별난 사람이다. 떨어져 버려진 홍시가 아까웠던지 아내의 유혹이 시작되었다. 주인이 있었다면 이렇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홍시라도 따 달라 했다. 십여 년 동안 수확하는 사람이 없었고, 올해 이렇게 풍성하게 열려 있어도 수확하는 이가 없으니 분명 주인 없는 나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갈등하는 나에게 딸 수 있는 명분을 마음에 심기 시작한 것이다. 결론을 내렸다. 아내의 말대로 일단 홍시라도 따기로 했다. 두면 또 떨어져 버려질 것이므로. 문방구에 들려 매미채를 하나 샀다. 2단으로 길이를 늘일 수 있는 매미채였지만 감을 따기에는 턱없이 짧았다. 낚시 뜰채를 연결해 길이를 배로 늘이자 홍시가 사정권에 들어왔다. 여섯 개를 수확했다. 손에 쥐고 보니 속살이 훤히 비치도록 농익은 홍시가 너무 예뻐 먹기가 아까웠다. 정성스레 소쿠리에 담아 아내에게 진상하였다. 청도 반시는 매년 사다 먹었지만 처음 대봉 홍시를 맛 본 아내의 얼굴이 홍시보다 예쁜 미소를 짓는다. 이 맛을 이제야 알았다며 아주 후회하는 표정이다. 나 또한 대봉홍시는 맛을 보지 못한지라 한쪽을 먹어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특출한 홍시가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다니. 홍시를 따서 먹은 날. 다시 잠자리채를 들고 나무 곁으로 갔다. 상상 속의 주인장이 나타나 달린 감을 한 번에 다 따갈 것만 같았다. 그리되면 매미채를 산 것이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다. 일단 세 개만 따서 홍시를 만들기로 했다. 이 날 이후 이른 아침에도 늦은 저녁에도 감나무를 확인하는 것이 일과가 되고 말았다. 이삼일이 흐르자 따 둔 감이 홍시가 되어 아내를 보양했다. 다시 매미채를 들고 이번에는 더 잘 익은 감을 땄다. 일주일여가 흐르자 감나무의 감은 삼분의 일 이상 아내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매일 서너 개의 감을 따면서 이웃과 나누어 먹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웃과 나누지는 못했다. 십여 년을 확인했다지만 내 소유가 아닌 나무에서 딴 감을 이웃에게 줄 수는 없었다. 뭐랄까! 이웃을 감 서리의 공범으로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태초 창조주가 천하만물을 만들었을 때 이 세상 모든 것이 무주물이었을 것이다. 창조주께서 인간을 만들고 천하만물을 소유하고 번성하라 하셨으니, 이 후 인류는 소유를 위해 전쟁도 불사하며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별이 총총한 새벽길을 나서는 가장의 임무는 치열한 소유의 전쟁을 통해 가족을 생육하고자 함 일 것이다. 오늘은 내 것이라도 내일은 남의 것이 되어 버리는 세상이 아니던가. 민법에 자기 농지가 아니더라도 평온하게 10년을 관리했다면 소유권을 인정하는 조항이 있다. 십년 동안 주인 없는 나무라는 것을 확인한 나에게도 나무의 소유권은 주어지는 것일까. 설사 소유권이 주어 진다해도 온전한 나의 노력에 의한 소유가 아니기에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허나 어찌하랴! 떨어진 지갑이야 파출소에 갖다 주면 될 일이지만, 감나무의 감을 따서 파출소에 갖다 줄 수도 없다. 그렇다고 까치들에게 가실을 시킬 수도 없고 이리저리 진퇴양난인 셈이다. 내 소유라면 얼마나 유유자적하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주인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한구석에 있었기에 서리를 하는 유희(?)를 즐길 수 있었다. 앞으로 보름쯤은 매일 서너 개의 감을 따서 아내에게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내년에도 감이 풍성히 열린다면, 느긋하게 기다려 적기에 수확을 하리라. 그리고 마음 편히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익어가는 가을날 홍시의 맛을 즐기리라. 이브의 유혹에 넘어가 홍시를 범한 나는 창조주로부터 어떤 벌을 받을까! (2013년)
최종편집:2025-06-17 오전 1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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