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자전거가 없어졌어요!" 등교 한다고 나간 아들이 되돌아 들어와 다급하게 한 말이다. 어찌된 영문인가 싶어 자전거 세워둔 곳으로 가보니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 대문을 잘 열어두는 편이라 `누군가 훔쳐 갔구나` 싶었다. "아빠가 찾아볼 테니 학교 다녀오너라"하고 돌아서는데 씁쓸한 기분과 함께 옛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가난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내 삶을 지배하며 꿈과 희망을 좌절로 맛보게 했다. 대학을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못 했다. 졸업하고 한 달쯤 지나 어머니에게 대구에 나가 취직해서 일하며 대학진학 공부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어렵사리 삼만원을 차용해서 주셨다. 난생처음 어머니 품을 떠나던 날은 아직도 흑백사진처럼 내 기억 한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나를 대처로 떠나보내며 소리 없이 흘리시던 어머니의 눈물 속에 담긴 의미를 불혹을 넘긴 이제야 조금은 이해되는 듯하다. 그날 옷 가방 하나 들고 집을 나서면서 `차라리 합격이나 하지 말걸. 그랬으면 내 마음도 어머니 마음도 조금은 덜 아팠을 걸`하는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었다. 어머니의 눈물 배웅 속에 삼만원을 들고 집을 나선 나는 지금까지 어머니 품을 떠나 부평초처럼 객지를 맴돌고 있다. 일가친척도 없는 대구에 발을 딛고 처음 취직한 곳이 소규모 섬유수출업체였는데, 2층 사무실에 조그마한 방이 있어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서문시장에서 구입해온 섬유를 2층으로 등짐져서 올리고, 아주머니들이 재포장한 섬유를 컨테이너에 옮기는 일이 전부였다. 대학진학의 꿈을 안고 대처로 나왔건만 공부는 고사하고 1층에서 2층에 이르는 열여덟 계단을 하루 종일 오르락내리락하느라 밤이면 고단함에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쯤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게 아닌데……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하는 조급함이 들었다. 돈은 적게 벌더라도 공부할 시간이 주어지는 직장이 필요했다. 수소문하던 중 친구의 소개로 부산일보 대구지사 총무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직은 했지만, 잠자리가 큰 걱정이었는데 지사장이 내 딱한 사정을 알고 사무실에서 잠을 잘 수 있게 허락을 해주었다. 사무실에는 소파가 2개 있었는데 밤이면 소파를 모아 잠자리로 삼았던 것이다. 소파에서의 잠자리는 이후 6개월여 계속되었다. 신문사 총무이다 보니 매일 자전거를 타고 고속버스터미널에 가서 도착하는 신문을 싣고 지사로 오고, 구독자로부터 구독료를 받아 오는 것이 주된 업무였는데, 이 시절 자전거를 타고 대구 구석구석을 다 다녀 본 듯하다. 업무상 자전거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고, 자전거 관리 또한 신문사 총무의 주된 임무였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완연해질 무렵, 학력고사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을 때 독서실로 거처를 옮겼다. 한 달이라도 공부에 집중하고자 함이었다. 독서실에 오면 인도 옆 가로수에 자전거 잠금장치를 하고 두었는데,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 보니 자전거가 사라지고 없었다. 순간 지사장의 화난 얼굴이 떠오르면서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출근해서 자초지종을 지사장에게 보고하니 생각보다 적은 질책을 하셨다. 월급 십만원 받던 나로서는 잃어버린 자전거를 변상하라 할까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이후 잃어버린 자전거는 기적같이 나에게 되돌아온다. 수금하러 가던 길에 어느 문방구 앞에 세워진 자전거가 낯이 익어 봤더니 잃어버린 자전거였다. 넓디넓은 대구에서 기적처럼 자전거를 되찾았다는 기쁨에 힘껏 페달을 밟으며 신문사로 되돌아오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전거를 잃어버린 아들은 아쉬움은 잠시이고 새 자전거를 산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일주일 안에 자전거 못 찾으면 새 자전거 사 주마" 했더니 `이것을 사나, 저것을 사나` 하며 아주 신이 난 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이런 기대도 며칠 가지 못했다. 인근 시지 아파트 경비실에서 전화가 온 것은 자전거를 잃어버린 며칠 뒤였다. 경비실 앞에 세워진 자전거를 며칠 동안 유심히 지켜보던 경비원이 자전거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해 준 것이었다. 아내와 함께 음료수 한 박스를 들고 경비원을 찾아가 고맙다 인사하고 자전거를 찾아오면서 새 자전거를 산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실망할 아들이 생각나 아내와 함께 한참을 웃었다. 살아가면서 잃어버리는 것이 어디 자전거뿐이겠는가! 사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 소중한 무엇인가가 내 곁을 매시간 떠나간다. 젊음이 떠나가고, 무관심 속에 지인이 떠나가고, 사랑하는 피붙이들이 떠나간다. 자전거를 잃어버린 것은 아주 조금 잃은 것일 것이고, 찾았다 한들 조금 찾은 것일 것이다. 내게서 언제부터인가 잊혀져버린 내 삶 순간순간을 같이 했던 해묵은 친구들도 되찾고 싶고, 한 때나마 미치도록 사랑했던 여인의 소식이나마 가까이하고파 진다. 자전거야 새로 사면 될 일이지만 지나가고 잃어버린 청춘과 우정과 사랑은 되찾기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들의 삶에 물질보다도 사랑. 우정. 건강과 같은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 찾기 어려운 것들은 오래도록 곁에 두고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들~ 자전거는 얼마든지 아빠가 새로 사주마. 그 대신 물질보다 더욱 소중한 것들은 네가 소중히 간직하고 잃어버리지 마렴. 그런 것들은 아빠가 다시 찾아 줄 수 없는 것들이란다.` (2007년)
최종편집:2025-06-17 오전 1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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