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여년 전 경북 영양에 살았던 정부인(貞夫人) 장씨(장계향)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쓴 한글 요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房)`이 있는 줄은 한참 전에 알았지만, 전국 열두 종가의 `내림 음식`을 매주 한 집씩 선보이는 `섬김·나눔` 행사가 있는 줄은 일간지를 보고서야 알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종부회 회장이 내 죽헌 선조 종가의 종녀 최정숙 씨인 것과 내방가사도 지은 것을 알게 된 사실이다. 오늘의 세태에서 음식디미방이라거나 전국 종부회라고 하면 언뜻 보아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KBS `다큐 공감`을 보고서야 혈통을 중시하는 전통의 가족제도를 새롭게 알게 되어 조상숭모의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 그런 가치관도 오늘의 다원·다양화된 세태와 공존해 가야 함을 알게 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생장할 때도 종녀였고 취가(娶嫁)하고서도 그 또한 종부였으니 `女`에서 `婦`로만 바뀌어 `여자의 숙명(?)`이 아니라 하늘이 정한 운명이라 함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열두 종가 종부회 회장의 중책도 수행하고 있으니 `가혹한`이라고 하기보다는, 종녀로 생장하였으니 마땅히 종부가 된 것에 그 당위성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성이씨 18대 종부, 노송정이라는 당호 속에 77칸 고택의 유지 관리는 물론 연중 열다섯 번 봉제사를 받드는 데의 정성과 성력에는 놀라울 수밖에 없다. 진성이씨라는 명문거족에 유가적 행사인들 오죽 많을까. 큰 행사일 때는 350여 명 접빈도 했다니 절로 찬사가 나온다. 더구나 `진성`하면 대명문의 유학자요 경세가인 퇴계를 먼저 떠올리는 데다 `퇴계선생 태실`도 보존하고 있어서 그 탐방객이나 관광객을 맞아야 하는 명문가의 역할이 어떨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앞서 언급한 KBS 방송에서 `별곡`이라고 한 것만으로도 그런 짐작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 많은 접빈객, 물 한 잔 차 한 잔도 소홀함이 없었다. 철따라 생산되는 두릅, 아카시꽃 등을 항상 냉장 보관했으며 조리하여 저장한 음식 가짓수도 한 3~40가지가 된다고 했을 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것도 오늘의 흐드러진 기계화의 패스트 푸드가 아닌 제철에 나는 순수 자연산 전통 식품이었으며, 입에 넣으면 금방 형체도 없을 음식인데 그걸 하나하나 정성을 담아 만드는 수작업을 보니 정말 상찬을 아낄 수 없었다. 특히 깨강정은 꼭 거피(去皮)해서 쓰고 한과, 정과에 고명으로 잣을 박을 때는 그 정성이 조형예술가로 보이게 했다. 또 송기(소나무 속껍질)는 우리 조상들이 흉년에 기근이 들었을 땐 생존을 위한 구황식품이었다며 봄에 소나무에 물이 한창 오를 때 송기를 벗겨 쌀가루와 섞어 떡을 만든다고도 했다. 송기의 쓰임새가 절량농가의 연명식인줄로만 알았지 그런 명문가에서도 송기를 쓴 것에 의외이기도 했다. 오늘의 신세대에게는 전통제례와 `종가의 종부`라는 개념도 잘 모를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어쩌다 1년에 한 번 만나는 4촌도 서먹해 하고, 핵가족 시대라 하여 친족도 형식적이고 의례적 관계가 됐으며 거기다 개인주의가 만연하여 공동체라거나 더 나아가 친족의 의미도 많이 희석돼가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런 세태에 대명문가의 종부가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본생이 종녀이고 또 한 가문의 종부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적어도, 어느 가문에서나 종부라는 영예를 가졌으면 모두가 그러하겠지만 유독 노송정의 종부가 그 사명에 몰입하는 것이 이 시대 종부의 표상이 되기에 충분함을 말하고자 함이다. 여느 종문의 종부라도 그 업무는 대동소이하겠지만 특히 최정숙 종부는 종가의 업무뿐만 아니라 종가음식 발전에 관한 협약 업무, 내방가사보존회 등 사회활동에도 진력하고 있으니 그 열정이 더욱 놀라울 뿐이다. 중학생 시절 문학소녀였던 최정숙 종부가 조선시대 규방문학이라고도 하는 내방가사를 쓰고 방대한 종가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노라니 명문가의 종부가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해야 하기에 충분하리라. 또 다르게 말하면 생활 양태도, 가치관도 변화해버린 오늘의 물질문명 시대에 조상 봉사와 종가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삶에 급급한 오늘의 시대에 한 번쯤 자기성찰의 기회도 됐으면 하는 조그만 바람이기도 하다. 오늘을 일러 글로벌 시대라고 해도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계승 발전해가자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숭모의 정신적 소양만은 잊지 말자는 말이다. 출필곡 반필면은 효도의 기본인데 사우(祠宇)에까지 꼭 그 예우를 갖추는 진성 명문가의 법도를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끝으로 최정숙 종부가 쓴 `종부소회가(내방가사)` 일부를 적는다. "성주법산 영천최씨 죽헌선조 큰 문중에 12대 종부 종부사명 감당하신 우리어매···, ···합가하여 오륙여년 시조부모 시어머님 시동생 6남매와···, 시조부님 9일장 3년상 모실 때에···, ···종부로서 자긍심을 심중에 담아두네. 아들 형제 헌헌장부 버팀목이 되었어라. 초로에 접어들어 고운 단풍 물들듯이 곱게 곱게 늙으려오."
최종편집:2024-05-20 오후 03: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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