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시작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순을 지나가고 있다. 올가을 들어 기상청에서 첫 한파주의보를 발표할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지는 바람에 내의도 챙겨 입고 두꺼운 점퍼로 무장하고 출근을 해야 했다. 그저께가 입동이었으니 늦가을이면서 초겨울로 접어들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전철역까지 걸어가다 보면 길에는 어제보다 더 많은 낙엽이 떨어져 있고 나뭇가지는 눈에 띄게 더욱 앙상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누군가 가을은 떠나는 계절이라고 하였는데 나무들은 여름 내내 함께했던 잎들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기약도 없는 헤어짐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떨어진 잎은 썩어서 거름이 되고 이듬해 봄이 오면 가지에는 또 새순을 터뜨릴 것이다. 이렇게 돌고 도는 순환의 법칙에 의해서 자연의 섭리는 계속 이어지는 것이리라.
우리 집을 나와서 길 하나를 건너면 수인선 전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 옛날 협궤열차가 다니던 길을 메꾸어서 터널을 만들어 열차가 다니게 하고 위쪽은 공원으로 조성을 하여서 아주 근사한 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운동시설들도 많이 설치하고 많은 주민들이 찾아와서 장기와 바둑을 두는 정자도 새로 지어서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특히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잘 만들어 놓아서 아침저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제 곧 막바지 공사가 마무리되면 새롭게 조성된 황토 십리길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아내가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와서 의사의 권고로 저녁마다 이곳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도 여전히 낙엽은 떨어져서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새로 심은 잔디 위에도 길 위에도 힘없이 굴러다니는 모습이 마치 우리네 인생을 보는 것 같아 가슴 한 쪽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다. 누구나 이맘때면 쓸쓸해지고 삶에 대해 허무한 생각이 들고 우울해지는 계절이긴 하지만 이 11월은 견디기 힘든 달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때야말로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회색지대에 들어있는 계절이 지금의 시기가 아닌가 한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가을이면서 겨울이기도한 두 마음을 가진 이중인격자와 같은 11월인 것 같다.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는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져서 나뒹굴다 깨어져 악취를 풍긴다. 요즘 도심을 걷다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전에는 지자체에서 수거를 해서 노인정 같은 시설에 보내기도 한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그냥 방치하다 보니 도심의 흉물이 되어 버렸다. 사는 동안 저런 냄새는 풍기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올 한 해도 저물어 가는 듯한데 항상 지나서 후회하는 것이 어리석은 자들의 뒷모습이리라.
이제 조용히 가는 가을을 보내주고 다가오는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산채수묵회 회장 오산 화백은 매일 아침마다 카톡으로 시 한편씩을 보내준다. 그 정성이 너무 고맙다.
그중에 이해인 수녀의 ‘11월의 나무처럼’이라는 시를 조용히 한번 읽어 본다.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해요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예요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놓은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고운 새 한 마리 앉히고 싶어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처럼
나도 작별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