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여자중학교 너의 생일은 4월 5일이다. 1955년 4월 5일, 그날은 우리 성주여중 가족들만의 경사가 아니라 온 성주군민의 축제의 날이었다. 고의환 성주군수, 김정태 경찰서장, 이종특 성주교육감을 비롯해서 배사원 성주면장, 왕예그노 레기날도 신부, 박원섭 성주의원 원장, 정상철 대구매일 지국장, 도재림 선생 등 너의 탄생을 갈망한 여러 유지들과 학부모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너의 탄생을 축하하며 "성주여자중학교 만세!"를 불렀다. 성주성당 왕 신부님이 독특한 악센트로 "성주여자중학교여 영원히 빛나라"고 한 축사가 기억에 생생하다. 개교 축하식 후에 모두 남정리 동산에 한 그루씩 기념 식수를 했다.   네가 잉태된 것은 1952년 봄이었다. 그때 성광중학교를 설립한 임종룡 장로가 여자중학교를 따로 하나 설립하기로 약속하고 김봉익 선생이 앞장서서 학생을 모집했다. 처음엔 성주읍교회 구건물에서 시작했다가 곧 성광중학교의 교실 하나를 빌려 성광중학교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수업을 했다.   그러다가 1953년도 1학기가 끝나면서 임종룡 장로가 약속을 어기고 우리 학생들을 모두 남녀공학인 자기네 성광중학교에 편입시키려 했다. 그러나 학생을 모집할 때 여자중학교 설립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남녀공학에 편입시킬 수 없다고 김봉익 선생이 반발해서 임종룡 장로와 결별하고 거기서 나와 책걸상을 이고 지고 성산동 살망태 주설자 씨 저택 아래채로 옮겼다. 학생수는 1학년이 30명이고 2학년이 43명으로 70명이 넘었다. 방 둘, 마루 하나에 다 앉을 수가 없어서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서 공부했다.   그때 그 마을에 살고 있던 류삼식씨가 그 딱한 사정을 보고, 그와 함께 `삼일제재소`와 `삼일정미소`를 경영하고 있던 김선효·조동호씨와 의논해서 그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교실을 마련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당시 배사원 성주면장에게 청원하여 면유지로 되어 있는 일제시대 신사 터를 기증받아 목조 교실 3간을 세웠다.   1954년 3월에 `성주여자중학원` 설립 인가를 받아 김봉익 선생이 원감이라는 직책으로 교무를 관장하며 도덕·공민을 가르치고, 최성옥 선생이 국어·가사를, 문종섭 선생이 영어·과학을, 벽진 미녀 여경숙 선생이 지리·역사를, 나는 수학을 맡고, 미술·음악 등 기타 과목은 성주국민학교 선생님들 중에서 강사로 도와주었다.   당시 군내 여학생들은 대부분 성주중학교나 성광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우리 학교를 찾아오는 학생들은 대개 집이 가난하거나 (공납금이 타 학교의 반도 안 됐으므로) 남녀공학을 꺼리는 일부 완고한 가정의 딸들이었다. 그러니 교사들에 대한 대우도 타 학교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자격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서울대 초대총장 최규동 박사의 따님인 최성옥 선생은 이화여전 가사과 출신으로 대구의 여러 여학교에서 오라고 해도 내 고향을 지킨다면서 가지 않았다. 나도 영어·일반사회 중등교사 자격증을 둘이나 가지고 있었고, 부산 초량교회 장로인 경남교육위원회 김성태 장학관이 부산시내 학교로 발령내 주겠다고 해도 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모두가 내가 학교를 설립한다는 개척자 정신으로 뭉쳐 있었다. 학생들도 정식 중학교가 아닌 `학원`에 다닌다고 해서 `학원띠기`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는데, 그런 야유를 받으면 "공학띠기야, 우리도 곧 여자중학교로 인가 난다" 하며 기죽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것을 볼 때마다 하루 빨리 인가가 나기를 학수고대했다.   1955년 3월 17일 드디어 `재단법인 경심학원(耕心學園)` 설립인가가 났다. 조동호 이사가 서울에서 보낸 전보를 받고 우리는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곧 이어 3월 29일 `성주여자중학교` 인가를 받아 3학년 학생들이 중학교 이름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반의 이순영이 성주·성광 두 학교를 누르고 대구사범학교에 합격해서 경사가 겹쳤다. 서둘러 졸업식을 올리고, 4월 5일 식목일에 성주여자중학교 개교식을 거행하게 된 것이다.   김봉익 선생은 이것으로 자기 할 일은 끝났으니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며 훌훌 떠나고, 채명득 장학사가 초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협동단결·정서도야·일인일기`를 교훈으로 내걸어 현모양처로서의 부덕을 갖춘 인격 양성의 덕목으로 삼았다.   이듬해 네 돌 날에 `성주여자고등학교`가 태어났다. "가야나라 옛 성터에 자리를 잡고 찬란한 민족문화 이어서 받아…" 교가를 부르며 입학해서, "…협동단결 정서도야 일인일기를 나가서나 남아서나 굳게 붙잡고 언니 아우 한 그루 혼이 뭉쳐서 영원무궁 빛내리 모교의 전통." 졸업의 노래를 부르며 교문을 나선 세월이 쌓여 어언 환갑을 지난 오늘, 학교 운영 재단이 몇 번이나 바뀌면서 교훈도 바뀌고 졸업의 노래도 바뀌고 심지어 학교 생일인 개교기념일 마저도 바꿔놓았다.   하지만 성주여자중·고등학교 너희의 진짜 생일은 4월 5일이다. 생모는 `학교법인 경심학원`이고 경심학원 설립자는 김선효·류삼식·조동호 이사이다. 해마다 4월 5일 식목일이 돌아오면 그 옛날 그날을 기념해 심은 남정리 동산의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며 이날이 우리 생일인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2018.3.10.)
최종편집:2024-05-20 오후 03: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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