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구 창호는 참외와 함께 희망의 노오란 꽃을 피우며 오늘도 고향에서 아침을 맞이한다.나보다 한해가 먼저지만 스무집도 못되는 작은 마을에 한두해 위 아래는 모두 친구다. 모두가 떠나려고만 하는 마을에서 그보다 어린 사람 찾기가 힘들어 나이와 상관없이 그는 아직 젊은이이고 소처럼 근하게 참외 농사를 한다.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붙박혀 파란만장했던 그의 지친 민생이 참외농사로 조금씩 주름을 펴는 모양이다. 우리들은 김씨네 제실에서 함께 고등학교를 다닌 후 각기 흩어져 그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또 무슨무슨 공부도 좀 했는지 모르지만 어느날 갑자기 이름도 처음 듣는 파파이야 나무 여러 포기 앞세우고 고향의 품을 파고들었다. 하늘을 찌를듯이 크는 열대식물 키우는 정치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모른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지 세 해 겨울을 두번 주저앉더니 서른 고개 넘을 무렵의 무모하고 도발적인 정치는 막을 내리고 새파란 젊은 놈도 혈압으로 쓰러지더라. 그에게 삶은 지뢰밭이었지만 그래도 젊음은 죽음의 경계도 밟고 건너오더라. 그후 또 몇몇해더냐. 우리의 젊음이 시드는 동안 만평이나 되는 산을 까서 과수원 만들고 사과에게도 단감에게도 자두에게도 제법 정치다운 정치를 베풀었는지 그덕에 마흔 무렵 장가도 들었다. 늦게 영근 꿈이 그의 삶을 떠메고 고소하게 흘러갈 줄만 알았다. 앞들의 논배미의 하우스 안에서는 참외가 노랗게 익어도 그걸 두고 정치할 생각은 없고 그저 자신과는 관계없는 고향의 명물이거니 했다. 세계화가 아프게 농촌을 짓이겨 사과값 과일 값이 바닥을 모르고 주저앉아서 농민들은 눈이 뒤집혀 농사 정치 탓할 때 그는 콧대 센 자존심 때문에 입은 열지 않지만 자질구레한 빚에다 육친의 빚보증까지 뒤집어써서 더는 일어날 수 없는 파경인가 하고 가끔씩 풍편에 소문을 듣는 나도 속으로 은근히 애가 탔다. 밀려드는 귤, 바나나,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과일 들이 보무 당당하게 짓쳐들자 이십년 가꾼 사과나무 감나무들이 속수무책으로 엎어지고 자빠진다. 쓰러진 사과밭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어 사지를 자르는 아픔으로 과수나무 베어내고 어린 자식 앞에 달마처럼 절망을 면벽하며 섰다. 사람은 자식이 있어 희망을 갖는다. 그에게 희망이 있어서 절망을 넘을 도약의 언턱거리도 있었는데 그것은 남태평양 열대 우림의 파파이야도 일제때 부터 이름이 빛나는 시퍼런 대구사과도 아니었다. 우리의 뼈가 여문 성주가 길러내고 그렇게도 일하기 싫어하며 도망갈 궁리만 하던 농업원예 시간에 접붙이고 길러보던 바로 그 참외였다. 성주 사람들은 그들의 핏속에는 다른 고장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참외 재배 기술의 맥이 흐르고 다른 지방 어디에도 갖추지 못한 참외 체질의 토양이 그곳에 있다고 믿는다. 고향이 있어 인화와 지리의 참외 정치를 할 수가 있고 그것이 창호의 삶의 숨통을 열어주었다. 늦장가 들어서 늦둥이로 둔 삼남매의 눈망울 초롱초롱한 등교길도 희망이 보이고 내 친구 창호가 늦으막에 고향을 버리지 않아도 되겠다. 인간사 고비야 다음 등이 안보이는 꼬불꼬불 산길이지만 고생도 끝은 있는 법이어서 파산을 위협하던 빚도 거의 가리고 먼저 난 두 딸은 제 앞가림 할 정도로 고맙게 커 주었구나. 칠순에도 장가 못보낸다고 걱정하던 중학생 머슴애 하나만 장성하면 창호의 치가도 부끄럽지 않은 부모의 대단원이 보이는구나. 성주에 참외가 있어서 험난한 파도의 너울치는 마루를 지나 잔잔한 바다로 가는 길도 보이는구나. 배계용(시인. 성주)
최종편집:2025-05-16 오후 01: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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