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내내 그렇게도 무성했던 나뭇잎들이 어김없이 만추의 문턱에서 붉게 단장을 하고 한잎 두잎 서글프게 땅바닥에 나뒹구는 낙옆들을 보면서 새삼스레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나는 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산책에 나오는 당나라 초 설직 선생이 지은 `추조람경(秋朝覽鏡) 가을아침 거울을 보고`을 소개해 본다.   가을아침 거울을 보고 (추조람경)… 설직    지는 잎에 나그네 마음 화들짝 놀라     客心驚落木(객심경락목)    밤에 앉아 가을바람 소리를 듣네     夜坐聽秋風(야좌청추풍)    아침에 거울 속의 내 모습 보니    朝日看容(조일간용빈)    내 한평생 거울속에 다 들어 있군     生涯在鏡中(생애재경중) 당나라 초기를 대표하는 서예가에다 화가와 시인까지 겸비한 설직(薛稷 649-713)도 어느날 문득 휘청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는 순간 깜짝놀라서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해놓은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나그네로 정처없이 떠도는 동안 벌써 가을이 왔단 말인가? 그는 밤이 깊도록 혼자 앉아서 쓸쓸한 가을 바람 소리를 듣는다 세월이 지나가는 회한(悔恨)을 담고 있는 바람소리에 아마 만감이 교차했을터. 문면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날 밤 술이라도 흠뻑 마시면서 회포에 젖었을 것 같기도 하다.   다음 날 아침에 무심코 거울을 쳐다보던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그 푸르던 젊은이는 도대체 어디가고 주름살 투성이의 웬 낯선 늙은이 하나가 흰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거울 속에 우두커니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 누구시죠?" 하고 하마터면 물어볼 뻔 했는데, 다시 보니 자신의 얼굴이다. 파란만장 했던 인생의 우여곡절들이 고스란이 담겨 있는 거울 속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인생 잘못 살았다 싶어서 슬그머니 후회가 되기도 했을게다.   어쩌면 내가 살아온 삶의 지나온 과거처럼 오직 한길만 바라보며 옆도 돌아보지 않고 공직에 봉직해온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나는 화선지에 붓을 들고 먹물을 듬뿍 찍어 설직 선생의 오언절구 시를 행초서체로 써 내려갔다. 한폭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나는 글을 쓰는 순간만은 그렇게 마음이 즐겁고 편안하기 짝이 없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 가는 구나
최종편집:2025-06-16 오후 06: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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