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디톡스(Detox)라는 건강법이 회자된 적이 있었다. 정신적 스트레스, 오염된 환경, 기름진 음식, 화학물질로 가득한 생활환경 등이 몸 속에 쌓일 경우 독소가 되니 이를 모두 비워낸다는 요법이다. 금식을 통해서 장을 비우고 명상을 통해서 마음을 덜어내 건강을 회복한다는데, 과거 잠시 유행했다가 자취를 감췄으나 대체요법으로 다시 각광받고 있다. 생각해보면 너무 오래 채우는 데에만 급급하며 살아왔다. 비움에 대한 진지하고 적극적인 생각이 모자랐다. 비우는 것이 꼭 잃는 것만은 아니다. 비움으로써 더 많은 것이 채워지기도 한다.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으나 기업의 구조 조정 역시 그런 비움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싶다. 엄청난 고통과 후유증이 따르겠지만 결국 기업 경영이 투명해지고 경쟁력이 생겨나는 척도로 여겨진다. 서양에서도 이런 비움의 미학에 대해 관심이 높다. 요가와 선을 통한 마음 수양에서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관심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한때 동양적인 미의 개념으로 유행한 적이 있는 젠(禪)스타일도 그런 영향에 힘입었다. `비운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때이다. 우리 삶 자체가 급격하게 서구화되어 왔기에 비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쉬운 예로 집안의 창고나 책상 서랍, 서재 등 둘러보면 거의 모든 공간이 가득 채워져 있다. 뇌는 어떤가. 각종 편리한 기기와 매개물을 통해 세상에서 들어오는 온갖 정보들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베트남 승려 탁닛한은 사람들이 온갖 정보들의 공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느리게 살고 비우며 살아야 한다고 설파하는데, 서양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종교 의식에서 명상이나 묵상도 결국 비움의 한 과정일 터.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노인일수록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인생에서 노인만큼 많은 것을 채운 세대가 있을까. 오랜 시간동안 쌓인 아집과 고정관념과 같은 좋지 못한 불순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식과 경험, 인품까지도 어느 정도의 `비움`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것도 이미 꽉 들어차 있다면 새로운 것이 범접할 수 없다. 노인들은 더구나 스스로 채운 것이 많기에 좀처럼 잘 비워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덜어냄에 대한 또 다른 방식, 기부 나이 들어서 `비움`을 잘 실천하는 이들도 꽤 눈에 띈다. 사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부 문화도 예전만 못하다는 게 요즘 사회 분위기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 이상을 기부하면 가입하게 되는 `아너 소사이어티`에는 최근 70,80대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한다. 지난 2009년까지는 단 한 명도 없다가 2016년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70,80대가 41명이나 된다고 하니 기부문화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이 통계를 알게 된 것은 필자 역시 기부를 하면서 1,000호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자라는 통보를 받고 나서였다. 돈이 많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기부할 수 있음을 실감했다. 노년층의 기부는 비단 고액 기부자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소액 기부자 중에서도 자신의 적금을 매달 기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형편에 용돈을 쪼개 기부하는 고령층도 많다. 마음의 여유를 덜어 누군가에 나누면, 그것이 다시 채워진다는 선순환을 오랜 세월동안 자연스레 체득한 때문이 아닐까. 필자는 나이 칠십이 넘어 교회를 찾아가 예수님께 귀의했다. 비록 화려하고 훌륭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이룬 것들을 비우기 위함이었다.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영접하고 나니, 나에게 얼마나 많은 교만과 과잉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비워야 새로운 것이 채워질 수 있다. 우리 노년세대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닌가 싶다.
최종편집:2025-06-16 오후 06: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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