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속에
집만한 것이 들어있네
여러 날 비운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데
이상하다, 누군가 놀다 간 흔적
옷장을 열어보고 싱크대를 살펴봐도
흐트러진 건 없는데 마음이 떨려
주저앉아 숨 고르다 보았네
무꽃,
버리기 아까워 사발에 담아놓은
무 토막에 사슴뿔처럼 돋아난 꽃대궁
사랑을 나누었구나
스쳐지나지 못한 한 소끔의 공기가
너와 머물렀구나
빈집 구석자리에 담겨
상처와 싸우는
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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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를 쟁반에 담아놓으면 질긴 순이 주렁주렁 달려서 아파트 베란다나 벽을 가득 메운다. 고구마 순을 낼 때 가마니에 모래흙을 담고 그 안에 고구마를 묻어두었다가 줄기가 나오면 그걸 잘라서 심곤 하던 어린 날의 기억이 새롭다. 여름 뙤약볕에도 쇠비름이나 고구마 순은 며칠을 죽지 않고 잘도 견디기에, 산비탈 물이 잘 빠지는 흙밭은 언제나 고구마 차지였다.
무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도회지에서만 살아 무꽃을 보지 못한 사람은 잘 모른다. 무를 사발에 담아놓은 채 집을 비운 사이, 무가 꽃을 세워 집을 밝히고 있다. 상처에서 사랑을 피우고 생명을 길어 올리는 놀라움에 활짝 눈을 뜨는 시인의 섬세한 표정이 시의 곳곳에서 빛을 뿜고 있다. 좋은 시다.
( 배창환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