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잎사귀에 도토리알 얼굴 부비는 소리 후두둑 뛰어내려 저마다 멍드는 소리 멍석 위에 나란히 잠든 반들거리는 몸 위로 살짝살짝 늦가을 햇볕 발 디디는 소리 먼 길 날아온 늙은 잠자리 채머리 떠는 소리 멧돌 속에서 껍질 타지며 가슴 동당거리는 소리 사그락사그락 고운 뼛가루 저희끼리 소근대며 어루만져 주는 소리 보드랍고 찰진 것들 물 속에 가라앉으며 안녕 안녕 가벼운 것들에게 이별인사 하는 소리 아궁이 불 위에서 가슴이 확 열리며 저희끼리 다시 엉기는 소리 식어 가며 단단해지며 서로 핥아주는 소리 도마 위에 다갈빛 도토리묵 한 모 모든 소리들이 흘러 들어간 뒤에 비로소 생겨난 저 고요 저토록 시끄러운, 저토록 단단한, -------------------------------------------------- 다갈빛 도토리묵 한 모에는 온갖 소리들이 들어 있다. ‘얼굴 부비는 소리’와 나무에서 ‘뛰어내려 멍드는 소리’, 몸 위로 ‘햇볕 발 디디는 소리’, ‘멧돌 속에서 껍질 타지’는 소리.......흩어져 살던 도토리들이 모여서 소근대고 엉기고 가라앉고 가슴 열리는 소리 단단해지며 서로 핥아주는 소리...... 도토리알들이 모여서 묵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끄럽고 단단한 소리들과 그 소리들이 사라지면서 남긴 ‘고요’가 필요하다. 시인은 도토리묵을 앞에 놓고 그 소리들이 안고 있는 도토리의 한생을 특유의 상상력으로 되살리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진짜 매력은 그 뒤에 감춰진, 도토리와 도토리묵에게 보내는 시인의 애정 어린 눈길에 있다. 그 눈길이 도토리를 훌륭하게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무릇 모든 좋은 시들은 다 그렇지만....... 배창환(시인 · 성주문학회)
최종편집:2025-05-14 오후 05: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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