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개정에 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작년 12.3 내란을 겪은 후에 개헌의 필요성이 각계에서 제기되고 있고, 6.3 대선에서도 헌법개정에 관한 공약들이 나오고 있다.
헌법개정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헌법개정의 핵심은 헌법 제1조를 어떻게 잘 실현하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나와 있는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잘 실현되는 헌법이 `좋은 헌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ㆍ행정ㆍ사법의 여러 문제도 결국 헌법 제1조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선출직 공직자들이 국민들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행정관료들은 기득권과 무사안일에 빠져 있다. 독립성을 지키면서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사법부는 독립성도 흔들리고 있고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국가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 그 출발점이 헌법개정이다. 물론 헌법개정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현재 권력`이 늘 소극적이었다. 지방분권에 대해서는 중앙정치권과 중앙관료집단이 모두 소극적이다. 국민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주권자들 스스로의 각성이 필요하다. 헌법의 주인은 정치인도, 관료도, 법관도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의 주인이다. 국민 여론이 헌법개정을 요구해야 1987년 이후 한 줄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헌법을 지금의 시대에 맞게 고칠 수 있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빠져서 헌법개정과 같은 국가적인 과제들을 방기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구성되어서 헌법개정 운동을 한 것과 같은 활동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권자 스스로 주권자 의식을 가져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부딪히고 있는 위기는 매우 심각하고, 복합적이다. 경제도 어렵고, 불평등도 심각하다. 초저출산은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역소멸`이라는 단어가 사용될 정도로, 비수도권 지역과 농촌의 위기는 심각하다. 기후위기, 남북관계 위기 등등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들이 누적되어 있다.
주권자 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이런 위기를 어느 누가 대신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는 것이다. 임기 5년의 대통령이, 임기 4년의 국회의원이, 임기 4년의 지방자치단체장이 이런 위기를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이는 이미 숱하게 경험해 온 것이다.
주권자 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이런 위기를 주권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특정한 정치세력이나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것이 주권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이다. 그리고 주권자로서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헌법개정을 책임있게 성사시킬 것을 정치권에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권자들의 의사가 그대로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요구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경우에는 한 사람만 뽑기 때문에 모든 유권자들의 의사가 골고루 반영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최소한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야 대통령에 당선되게 할 수 있다. 지금은 30%의 득표를 하든, 40%의 득표를 하든 1위만 하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선거제도이다. 이런 제도로는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어렵다. 대통령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은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와 지방의회는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도록 해야 한다. 승자독식의 선거방식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는 것과도 잘 어울린다. 국민들의 표심에 따라 구성된 국회에서 다수의 국회의원이 추천한 국무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면, 국무총리가 간접적으로나마 민주적 정당성을 갖게 된다. 그러면 국무총리가 헌법상 보장된 권한을 소신껏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도 자연스럽게 분산될 수 있다. 지방의회도 마찬가지로 구성되면, 특정 정당이 특정지역을 일당지배하는 현상도 완화될 수 있다.
이렇게 의회가 구성되면, 주권자들의 의사가 국회나 지방의회를 통해서 반영되기 쉽게 되고, 그것이 행정과 사법을 개혁하는 힘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