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스스로를 `국민주권정부`라 칭하며, `주권`이라는 개념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인공지능(AI)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정부는 자립형 AI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미국과 중국 중심의 글로벌 기술패권 구도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100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이른바 `AI 주권`을 확보하려 한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AI 국가책임 강화 4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공공데이터를 AI 학습에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초·중·고 AI 교육부터 창업 지원, 공공조달까지 국가가 AI 산업 전반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민간 중심으로 추진되어 온 AI 개발의 불균형을 국가가 조정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표면적으로는 바람직한 변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자칫 `AI 주권`을 특정 기업이나 국가 기관에 집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AI 주권`이라는 개념이 국가의 데이터 통제권을 강화하거나, 대기업 중심의 기술패권 구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 주권이란 과연 무엇인가? AI가 학습하는 데이터는 누구의 소유인가? 지금까지의 담론은 `AI 주권`을 국가나 기업 중심의 기술 자립 개념으로만 이해해 왔으며, 정작 그 기술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의 실질적 주체인 국민은 논의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공공데이터를 개방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공공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또 민간데이터에 대한 통제나 접근 제한이 곧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진정한 의미의 `AI 주권`은 단순한 국가 주도의 투자나 산업 정책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이는 국민의 데이터 주권,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디지털 자원의 공공재화라는 원칙들이 함께 전제될 필요가 있다. 데이터는 방송의 주파수와 같이 본질적으로 비배타적이고 비경합적인 자원이다. 여러 주체가 동시에 사용해도 가치가 줄지 않으며, 오히려 공유되고 가공될수록 그 사회적 가치는 증가한다. 따라서 데이터는 폐쇄적인 소유권 개념이 아니라 공익적인 자원으로 법과 제도 속에서 재정의되어야 한다. 특히 데이터를 독점하고 있는 일부 기업이나 국가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주권은 폐쇄적인 통제가 아니라 글로벌 협력과 분산된 거버넌스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 한국이 처한 AI 정책의 양면적 딜레마와도 연결된다. 한편으로는 국내 기업과 정부가 생성형 AI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를 확보하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글로벌 빅테크에 맞서 K-콘텐츠 보호와 저작권 강화 정책을 유지하려 한다. 이처럼 상반된 방향의 정책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AI 주권`은 오히려 개념적 혼란과 정책적 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혼란의 근본 원인은 기술주권에 대한 명확한 법·제도적 틀의 부재, 그리고 데이터 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데이터는 자본시장에서 쉽게 독점될 수도 있지만, 시장 밖에서는 공개와 협력을 통해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자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 주권국가`라는 선언이 아니라, 디지털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민주적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의 구축이다. AI 기술은 국민의 삶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발전한다. 그렇다면 그 기술의 혜택 역시 국민 전체에게 환원되어야 한다. AI 기술과 데이터의 사회적 가치는 투명한 운영, 다양한 주체의 참여, 공공성에 대한 집단적 감수성을 통해 실현된다. 최민희 의원의 `AI 국가책임 강화 4법`은 이러한 체계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이 국가와 기업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디지털 권력을 재편하는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지금 이 시점에서 정책의 철학과 방향성을 분명히 정립해야 한다. AI 주권은 기술력의 우위나 데이터의 소유보다, 기술과 데이터가 지닌 다양성과 공공성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데이터의 실질적인 권리 주체는 바로 이용자, 곧 국민이다. `AI 주권`은 특정 국가가 독점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 패권의 수단이 아니라, 민주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할 공공적 권리이자 공동 자산이다. 나아가 AI 주권은 국가의 경계를 초월한 인류 보편의 권리로, 공동의 책임과 협력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최종편집:2025-08-14 오후 06:42:01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유튜브페이스북포스트인스타제보
PDF 지면보기
오늘 주간 월간
출향인소식
제호 : 성주신문주소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3길 15 사업자등록번호 : 510-81-11658 등록(발행)일자 : 2002년 1월 4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성고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45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성고e-mail : sjnews1@naver.com
Tel : 054-933-5675 팩스 : 054-933-3161
Copyright 성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