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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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던 사물들이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 자기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사물과 대화를 시작하고,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지속된다. 그런 가운데 사물과 친해지게 된다. 사랑을 얻고 잃는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는 것은 정설이다.
이 시는 `사랑을 잃고` 쓴 시이다. `촛불`을 켜 놓고 어떤 `열망`으로 `흰종이`를 마주하면서 눈물 쏟던 시인의 집, 바깥으론 `겨울 안개`가 떠돌던 그 `빈집`의 추억은 스스로 사랑을 빈집에 가두어 두고 마는 시인의 사랑을 비극적인 사랑으로 아프게 다가온다. 모든 진실한 사랑은 아프다. 그리고 진실하면서도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아파서 두고두고 아름답다. 이 세상에 나와서 그런 사랑 하나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살았다 할 것인가. 외워 두고 읊조릴 만한 시다.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