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고속버스 차창으로
곁에 함께 달리는 화물차
뒤칸에 실린 돼지들을 본다
서울 가는 길이 도축장 가는 길일텐데
달리면서도 기를 쓰고 흘레하려는 놈을 본다
화물차는 이내 뒤쳐지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저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름답다면
마지막이라서 아름다울 것인가
문득 유태인들을 무수히 학살한
어느 독일 여자 수용소장이
종전이 된 후 사형을 며칠 앞두고
자신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생리를 보며
생의 엄연함을 몸서리치게 느꼈다는 수기가 떠올랐다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끊임없이 피 흘리는 꽃일 거라고 생각했다
-------------------
생명은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그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생명 자체가 운동이며, 운동하
지 않는 것은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는 화물차에서, 죽으러 가는 길에서조차 쉬지 않는 저 무서운 종족 보존의 본능은 정녕 아름답다고 해야 할 것인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저 사랑"은 분명 비극이고, 처절하다. 시인이 말하는 "끊임없이
피 흘리는 꽃잎"은 무엇일까. 아름다움에도 `피`냄새가 섞여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피 냄
새, 죽음의 냄새가 섞여 있기에 우리의 삶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죽지 않는 것은 아름답지도 않을 것이고, 이미 살아 있지 않는 존재일 것이기에......
( 배창환·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