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지역 출향인의 활발한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월항면 안포리 출신 이진숙 전 대전MBC 대표이사는 성공한 언론인으로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대한민국 최초 여성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걸프전, 이라크전 등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전 세계를 무대로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 전 대표를 통해 고향에 대한 사랑과 도전정신, 진정한 언론인의 자세, 앞으로의 행보 등을 들어봤다. ▣ 자기소개 및 성주에 방문한 소감은? 1986년 MBC 기자로 입사해 문화부, 사회부, 국제부 등을 거치며 30년 넘게 방송국에 몸담았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MBC뉴스 이진숙입니다"란 인사말로 시청자와 만나며 중동지역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한 바 있다. 월항면 안포리에서 태어나 월항초를 다니다 아버지를 따라 대구로 이동했는데 오랜만에 고향 사람들을 만나 기쁘고 설렌다. 성주엔 친척도 많고 아버지도 모신 터라 가끔씩 찾아오곤 하는데 올 때마다 새롭고 이웃간의 푸근한 정이 느껴진다. ▣ 어릴 적 추억을 되돌아본다면? 가족에게 전해 듣기로 밖에 나가기만 하면 잡동사니를 한가득 주워왔다고 한다. 추수 후 친구들과 이삭을 줍고 밭에서 감자를 캤던 일 등 농촌과 관련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당시 대구에 살던 고종사촌이 방학을 맞아 성주로 오면 친구들과 다함께 어울려 하루를 보냈다. 각자 밥뚜껑에 쌀을 조금씩 챙겨와 직접 밥을 짓고 김치와 먹었던 추억이 생각난다. ▣ 교사를 그만두고 기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를 알고 싶은 욕구가 컸다. 지금도 사무실 한편에 세계지도가 걸려있을 정도다. 나라밖 모습이 무척 궁금하던 차 우선적으로 언어의 중요성을 느껴 경북대 영어교육과에 진학했다. 특히 대학 4학년 시절 영어에 물이 올라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에서 한·영동시통역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후 자연스레 MBC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고 서울을 거쳐 워싱턴, 바그다드 등의 해외소식을 전달했다. ▣ 여성기자로서의 삶은 어떠했나? 1986년 방송국 입사 당시만 해도 기자는 남성이 주류였다. 여성기자는 상대적으로 대접도 못 받고 사건 현장취재도 어려웠다. 그러나 입사동기 중에서 가장 먼저 특종을 잡으며 신임을 얻어 원하는 부서인 사회부에서 다양한 사건·사고를 취재했다.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 부패한 권력을 고발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지방대 출신의 젊은 여성으로서 고충이 많았으나 벽을 뛰어넘고 후배에게 귀감이 되는 사례를 남겨 뿌듯하다. ▣ 이라크 전쟁 당시를 회상해본다면? 앞서 1991년 걸프전 당시 취재장비도 부족하고 이라크 정부에서 추방을 당해 제대로 된 취재가 불가능했다. 그때 중동지역에서 다시 전쟁이 나면 반드시 현장을 지키기로 다짐했다. 아니나 다를까 2003년에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초기 취재차 바그다드에 있었는데 방송국에서 철수명령을 내렸다. 서울로 귀환시키는 줄 알았으나 바그다드에서 약 1천km 떨어진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기사를 송고하라고 했다. 기자는 현장보도가 생명인데 1천km 떨어진 호텔방에서 AP나 로이터통신 등이 취재한 기사를 우리말로 옮겨 소식을 전하는 게 무척 창피했다. 그래서 다시 비자를 신청해 국경지역의 난민을 취재하러 간답시고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 한국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기억에 남는 일은? 바그다드 시각으로 1991년 1월 17일 새벽 1시 30분경 본사에 아침 라디오 방송용 기사를 미리 녹음해 보내고 자리에 누웠는데 천지가 뒤흔들리는 큰 소리가 났다. 하늘에서 폭탄이 퍼붓고 미사일 발사모습을 두 눈으로 경험했다. 미국이 바그다드를 공습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이날의 기억은 절대 잊을 수 없다. ▣ 언론인으로서 지켜야 할 직업윤리는? 후배 언론인에게 상반되는 의견에 대한 확인을 반드시 거치라고 강조한다. 오보를 막기 위해 주장만 갖고 기사를 내선 안 된다. 항상 `균형`을 염두에 두고 양쪽의 의견을 청취한 후 소식을 전해야 한다. ▣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시장 출마를 밝힌 이유는?  성주가 고향이지만 대구에서 초·중·고·대를 졸업하며 청춘을 보냈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 대구는 여러 면에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목숨 걸어봤듯이 대구를 위해 남은 청춘을 바치겠단 일념하에 출마를 결정했다. ▣ 위정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워싱턴 특파원 시절 위인을 인정하는 미국사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미국인은 화재현장에서 아동을 구출한 소방관,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 등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 수도 워싱턴과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처럼 훌륭한 도시나 건축물 등에 자국민의 이름을 붙인 점이 주목할 만하다. 어느 날 한 미국인에게 까닭을 물으니 "우리에게 영웅이 있어야 후손이 배우지 않겠냐"고 들었다.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것도 좋지만 선대의 훌륭한 전통을 계승하고 장점은 발전시켜 우리만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한다. ▣ 고향을 지키는 성주군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성주는 참외란 고소득 작물을 통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출향인으로서 성주가 자랑스럽다. 평생 고향을 잊지 않으며 살겠다. 좋은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최종편집:2024-05-17 오후 04:49:36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유튜브페이스북포스트인스타제보
PDF 지면보기
오늘 주간 월간
출향인소식
제호 : 성주신문주소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3길 15 사업자등록번호 : 510-81-11658 등록(발행)일자 : 2002년 1월 4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성고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45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성고e-mail : sjnews1@naver.com
Tel : 054-933-5675 팩스 : 054-933-3161
Copyright 성주신문 All rights reserved.